역사 잡글

조선의 처절한 항쟁,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 이야기.

역이기 2024. 9. 28. 04:58

 

 

미국이 군함을 앞세워 동경만에서 압박하자 일본은 곧바로 항복하고 개항을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조선 역시 개항 시키기 위해 미국은 미해병대와 해군 군함을 조선에 파견합니다. 

 

 
그렇게 한양으로 미 군함이 진격하였고 중요 길목인 강화도 수로에 미군이 진입합니다.
이때 강화도를 수비하는 조선군이 적함을 발견하자 곧장 포격전이 시작되었죠
당시 포격을 맞은 미군 함장 한 사람이 이때의 경험을 짧게 술회합니다. 
 
"남북전쟁 때에도 이렇게 맹렬한 포화를 받은 적이 없다" 
 
강화도 포대의 치열한 포격이 있었고 무려 400문에 달하는 화포 교전이 시작되었죠 
근데 그 결과 정작 피해는 고작 미군 부상 1명 조선군 1명 전사 
 
그 이유는...
 

 

 

 

 
당시 조선군은 이딴 걸 화포라고 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미군은 무기의 차원이 달랐습니다. 

군함은 더욱 발전한 증기선 함대였고 병사와 무기는 남북전쟁의 경험을 가진 정규군과 신식 대포로 무장한 상태입니다. 

 

이 교전 이후 미 해병대 대위는 편지에서 당시의 포격전과 조선군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포는 매우 조잡하오. 

통나무로 된 포가 얹혀 밧줄로 묶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미리 정해진 지점 외로는 사격을 할 수 없다고 하오.

그래서 우리 배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에야 포격을 했소. 커다란 포환이 날아왔는데 배에는 전혀 맞지도 않았소.

단지 총통이라고 불리우는 소형 화기에서 발사된 조잡한 탄환 두어 개가 적중했다고 하오. 

그 총통이라는 것은 두 명이 어깨에 걸쳐메고 화승으로 발사하는 것이라고 하오.

단지 우리 승조원들 3명이 맞았는데 가벼운 부상이라고 하오.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우리들에게 그들이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 수 있을 것이요."

 

이후 조선 조정과의 미군 함대 사이의 일련의 교섭이 진행되었지만 조선군의 수준을 파악한 미국은 강제 개항을 결심합니다. 

미군은 힘을 보이고자 지상군을 상륙하여 강화도 직접 점령을 시도 하게 되죠

 

그게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입니다.

 

양측은 대포의 수준에서도 이미 차이가 났지만 개인 화기는 더 심해 사실상 넘사벽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조선군의 개인화기는 사실상 임진왜란 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불 지펴서 간신히 사격하는 화승총을 여전히 주력 무기로 쓰며 조선군은 엉성하게 사격을 할 뿐이었죠 
 
그에 비해 미군은...
 

 

 

이미 남북전쟁의 경험 + 후장식 소총을 사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군이 화승총에 불을 지피며 한발 한발 앞에 총알 넣고 사격을 할 때
미군은 후장식 소총으로 뒤에서 빠르게 장전하며 안정적인 조준 사격이 가능했습니다. 
화포 역시 조선군이 총통수준의 구식 화포를 나무에 고정하여 명중율이 형편없는 사격을 할 때
미군은  신식 대포를 끌고와 조준하여 포격할 수 있었고 파괴력과 정확도 역시 넘사벽이였죠
 
미국의 침입 이전에 발생한 프랑스의 병인양요 침략 때만 하여도 프랑스군도 전장식 소총을 사용하였습니다 
때문에 개인화기가 성능에서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는 하나 조선군의 화승총으로도 어느정도 교전이 가능했죠 
실제 조선군은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며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직전까지 이뤄진 남북전쟁 경험으로 무기 기술을 더욱 발전 시킨 군대였죠  
1차대전과 2차대전은 고작 몇년 격차이지만 군대와 무기가 전혀 수준이 다르듯 보통 큰 전쟁 이후 무기수준은 급격히 달라집니다.
미군은 사실상 무기의 수준과 질이 이미 조선과 달랐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군대가 남북전쟁 이후 군대를 상대 할 수 없죠 
 
그나마 다행? 인건 조선군은 화력은 심각하게 밀렸으나 신무기?인 방탄복을 개발해 입고 있었습니다. 
 
 
 
천을 여러겹으로 중층으로 쌓아 총알을 막아 내는 방식의 구식방탄복입니다. 
하지만 비극은 이런 노력을 떠나 사실상 게임이 안되는 전투였다는 거죠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 양측 전력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군 전력 
 
해군 군함

- USS Colorado(1856년 건조/3425톤/10인치 포 2문, 9인치 포 28문, 8인치포 14문)
- USS Alaska(1868년 건조/2394톤/11인치 활강포 1문, 60파운드 포 1문, 20파운드 포 2문)
- USS Palos(1865년 건조/420톤/포 2문)
- USS Monocacy(1864년 건조/1370톤/13인치 구포 1문, 32파운드 포 2문)
- USS Benicia(1868년 건조/2400톤/11인치 활강포 1문, 9인치 활강포 10문, 60파운드 강선포 1문, 20파운드 후장식 강선포 1문)

지상군 병력 
- 해군 및 해병대 1,230명, 12파운드 곡사포 85문 

조선군 전력

지상병력 
- 화승총병 500여명. 
 
이미 무기의 질과 수준도 넘사벽 차이인데 병력 규모와 숫자에서도 2배 이상의 격차가 났습니다. 
 
그 결과 양측 피해 

미군: 전사 3명, 부상 10명

조선군: 전사 243명, 익사 100여명, 포로 20명
 
미군 3명 전사 VS 조선군 400명 전사...그야말로 조선군의 참패였습니다 
 
조선군은 500명이란 숫자도 미군의 상륙 3일전에 파견이 된 병력이었습니다.
미군 군함이 등장했단 소식에 급하게 파견된 부대로 지휘관인 어재현을 빼고는 강화도에 와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때문에 방어측에서 보통 유리한 이점인 어디가 유리한 방어 위치인지 파악 조차 못 한 상태에서 바로 전투에 임하게 된 것이죠 
반면 미군은 1200명은 남북전쟁 경험을 가진 베테랑 정규군였습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무기도 볼품 없는 수준인지라 미군이 상륙할 때 200명이 집중 사격을 했음에도 아무런 피해를 못 줬습니다 
교전 중 미군 사망자가 2명에 불과할 정도로 명중률이라는게 형편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일방적인 학살의 전투가 벌어졌죠 
미군 지휘관 사망자인 휴 맥키 대위의 경우도 조선군이 죽어가는 와중에 창으로 기습적으로 찔러 사망한 사례입니다. 
사실상 전투라기 보기 힘든 전투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이런 압도적 차이의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보여준 조선군의 전투의지입니다 
진작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진행 되었음에도 조선군에 탈영자가 1명도 없었습니다. 
광성보에서 벌어진 조선의 절망적인 전투의 과정에서 그야말로 처절한 육탄방어를 했습니다  
화승총 무기가 소용없게 되자 돌을 던지고 흙을 뿌려가며 그야 말로 몸을 던져 싸웠다고 전해집니다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조차 미군이 조선군 부상병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곧장 정신을 차려 달려드니  
전투의 형세가 사실상 기울어져 학살에 가깝게 되었음에도 전투가 이상하게 안끝나죠
미군이 전투가 드디어 끝났다 여기면  누군가 지휘관의 수(帥)자 기를 세워 다시 조선군이 죽기살기로 덤비 길 반복합니다  
그야말로 기괴한 육탄전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때 본 인상적인 지휘관 깃발을 전투 후 미군이 전리품으로 챙기게 되었고 그 병사는 메달오브아너를 받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전사자 비율이 나온다는 건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압도적 전력차이가 나오고 패전이 명백한 상황에서는 보통 후퇴하거나 항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광성보 전투의 엄청난 사상자 교환비가 나온 이유는 스스로 전멸을 선택한 케이스였기 때문입니다. 
조선군 피해 전투 중에 전사한 240명을 빼고 익사 100명이란게 자살자입니다. 
전투의 패전이 확실시 되고 광성보가 결국 미군에 함락 되자 남은 조선군들은 강화도 앞 바다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결한 숫자가 100명이란 것입니다. 
 
이건 당시 미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막연하게 동양의 유색인종 오합지졸이라 여기며 일본처럼 단 기간에 개항이 가능하다 여기며 온 조선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면 강화도 앞 바다에 미군 군함이 등장했을 때 조선은 항복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협상 과정에서 미군의 우수한 함정을 보여줬을 때 조선은 항복했어야 합니다 
모든 협상이 결렬 되었다 해도 직접 공격해 화력의 압도적 차이를 보였을 때는 당연 항복해야죠 
 
근데 신미양요 첫 지상 전투의 광경이 충공갱 수준입니다. 
 
광성보에 전투를 개시 하기 전 지휘관 어재현과 조선군 500명이 죽기를 맹세하고 군가를 불렀고 미군이 그 광경을 기록했습니다 
그에 대해 묘사하기를 "무서울 정도로 구슬프고 장엄하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로 미군이 전투에 승리하긴 했지만
"대체 이 새퀴들은 뭐하는 녀석들이지?" 라는 충격을 준 전투죠 
 
이 전투 이후 새벽에 초지진에서 있던 지휘관 이렴 등이 광성보로 야간 기습을 해왔고 미군 전투함 1정을 퇴각 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미군은 이미 광성보 전투로 상당량의 탄약과 군수 물자를 소비한 상태에서 조선의 개항이 당초 목표와 다르게 장기전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하죠 
결국 개항을 포기하고 철수하며 신미양요가 끝나게 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당초 조선의 개항은 일본과 동일하게 단 기간에 쉽게 진행 될 것이라 판단 하에 진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완강하게 개항을 거부하였고 첫 전투에서 경험으로 미루어 봐 엄청난 저항이 향후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됩니다 
 
미국의 선택은
 
1.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침략한다.
2. 출혈을 피하기 위해 조선 따위는 그냥 버린다
 
2가지 선택지가 남았고
실제 원래 목표이자 중요 개항국가인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그냥 조선 개항을 포기하게 됩니다. 
 
애초 서구열강의 동아시아 식민정책에서 목표는 중국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모든 열강이 그러했죠 
일본 개항은 중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교두보 역할이었을 뿐이고 식민화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조선 역시 중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교두보일 뿐인데 희생을 할 이유가 전혀 없죠. 이미 전투는 대승했고 작전은 성공입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전투에서 패전하긴 했지만 어찌하였던 표면상 미국의 개항 요구를 좌절 시키는데 성공했다입니다. 
조선은 승리한 전쟁이라 선언하며 정신승리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대원군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주게 됩니다 
이때 기세로 대원군은 숙원 사업인 서원철폐도 성공 시키죠 
 
문제는 조선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군대가 전멸한 전투를 승리라 주장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통할리 만무합니다
이후 청나라가 무참히 박살나는 모습을 보며 사태파악을 하죠 개항은 절대적인 대세라는 진실입니다.
결국 기존 체제의 한계를 알게 되었기에 대원군은 실각하게 되고 개항을 준비하게 되죠 
 
그렇게 5년 뒤 엉뚱하게도 일본에 개항을 하게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