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글

더 그레이트 게임 영국과 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한반도 이야기.

역이기 2024. 9. 28. 04:59

 



 

 

더 그레이트 게임.

1856년~1907년 까지 지속 된 영국과 러시아 간의 상호 견제 경쟁입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영국은 자국의 국가 안보 대전략으로 유명한 2강국 기준 해군 정책을 입안합니다.

내용은 2위 3위의 해군력을 가진 국가의 함대 합계 이상의 함대를 보유한다. 

즉 2위 3위 국가가 연합을 하여도 영국의 함대를 상대 할 수 없도록 막강한 수준의 해군력을 항시 우위를 점하며 유지한다. 입니다  

 

이로써 영국은 사실상 전 세계 바다를 통제하는 명실 상부 한 세계 최강국이 되었죠. 

19세기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 입니다. 

 

이는 또한 다른 의미로 영국의 허락이 없으면 어떤 국가도 식민지 확장을 못 한다는 뜻을 말합니다. 

식민지 확장과 무역은 바다를 통해 이뤄지고 그 중심은 해군이니까요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에서의 프랑스 축출입니다. 

인도에서 영국과 함께 식민지 경쟁을 하던 프랑스는 영국이 인도 합병을 국책으로 정하자 곧 바로 인도에서 축출 되었습니다. 영국이 바다를 장악해 통제한 상황에서 인도 내륙에서 경쟁이란게 안되죠 

차선책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로 후퇴해 베트남 식민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안도를 독식한 영국은 곧 합병하며 인도 제국을 성립합니다. 

영국이 전 세계의 패권을 잡아 던 시기로 팍스왕언니 시대입니다.

 

1860년 이후 제 2 식민지 시대는 사실상 영국의 선택으로 식민지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식민지 협상으로 영국이 점령 통제 하는게 부담인 지역만 영국이 프랑스에게 양보해 주는 정도의 식민지 분할이 진행되었죠

 

프랑스조차 쩌리가 되어 영국이 주는 떡고물을 감사 하게 먹던 시대입니다 

프랑스에선 순화해 나폴레옹 3세의 친영 외교 정책이라 합니다.  

 

당연하게도 한참 후발 주자에 불과한 독일, 이탈리아는 이들의 양국의 이권을 넘어서는 식민지 확장이 불가능 합니다. 이런 영,프의 식민지 독점에 대한 불만이 쌓여 이후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도 작용했습니다. 

 

그런 막강한 팍스 왕언니의 유럽 질서를 뿌리채 흔들어 버린 단 1개의 열강 국가가 있으니

그게 바로 러시아입니다. 

 

영국이 유럽에서 막강한 이유는 해군력 덕분인데 러시아는 육로를 통해 식민지 확장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여긴 좀 러시아의 억울한 사연이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표트르 대제 이후 서구화를 진행하며 자신들도 후진국을 넘은 열강이 되고파서 해군력을 육성했죠 발틱 함대와 흑해 함대를 창설했고 이를 기반으로 북해, 방향과 지중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틱해 연안에 페테르부르크 수도까지 건설해 옮겨 놨어도 별 소득이 없습니다  

북해는 영국 본토와 독일에 막혀 더이상 나갈 수 없는 견제를 당했거든요 

그럼 ​다른 유일한 출구 수단은 흑해 밖에 없습니다 

흑해 함대를 동원해 보스포로스 해협 (이스탄불-소아시아 해협)을 통과하고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이를 저지한게 바로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러시아는 지중해로 나아가기 위해 오스만을 압박했을 뿐인데 같은 기독교 국가라고 여겼던 영국과 프랑스가 나타나 이제 와서 러시아를 후려치며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한 거죠

 

나이팅게일의 활약으로 유명한 '크림반도 전쟁'입니다. 

 

만약 지중해로 러시아가 나오면 영국에게 불필요한 지중해 함대 증설이 강제 되기에 사전에 진압한 것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는 말 그대로 흑해 함대가 모두 궤멸 당해 전부 소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러시아는 영국한테 이리저리 뚜드려 맞다 보니거의 반 강제적으로 해군력을 통한 해외 진출 자체를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 대신 러시아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정책이 육지를 통한 확장입니다.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외부로 확장하려면 오직 바다를 통해서 만 나갈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군이 필요하죠 

근데 그 바다는 영국 해군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럽의 모든 국가는 식민지 확장을 하며 동시에 영국의 패권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죠 

전 세계 어딜 가나 만나야 하는 영국 해군의 존재로 항시 통제를 당하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영국 패권이란 매번 해전을 통해 승리하여 유지되는 패권이 아닙니다.

 

바다 자체를 통제하는 개념입니다. 

 

 

(영국 해군 전략 쵸크 포인트를 통한 세계 바다 통제)

 

오늘 날 미국으로 이어져 그러하듯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지정학적 우위와 전략으로 장악한 패권입니다. 

위 그림에 나온 파란 동그라미가 당시 영국이 거점으로 확보 한 전 세계 중요 해외 식민지들입니다. 

 

'쵸크 포인트'라고 합니다

 

 

* 발틱해 - 북해 대서양으로 이동 하려면 영국 본토를 거쳐야 하며

 

 *대서양 - 지중해를 이동 하려면 영국의 지브롤타를 거쳐야 하며

 

*서아프리카 - 동아프리카를 이동 하려면 영국의 케이프타운을 거쳐야 하며

 

* 유럽 -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 하라면 영국의 바하마 제도를 거쳐야 하며

 

* 지중해 - 홍해 아라비아 반도를 이통과 하려면 영국의 수에즈 운하를 거쳐야 하며 

 

* 서인도 - 동인도로 이동 하려면 영국의 스리랑카 실론섬을 거쳐야 하며 

 

* 인도 - 중국으로 이동 하려면 영국의 싱가포르를 거쳐야 하며

 

* 동남아에서 - 한,중,일로 이동 하려면  영국의 홍콩을 거쳐야 합니다. 

 

전 세계 해로의 거점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막강한 영국의 지방 함대가 해당 상주 하여 주변 해역을 통제하는 것이죠 

 

바다를 통해 문명과 문명, 대륙과 대륙, 국가와 국가 사이를 상호 이동해 교역을 하려면 영국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지구 상의 어떤 국가든지 예외 없이 영국이 원할 시 언제든 물류 차단과 통제가 가능하단 뜻이죠 

 

여기의 영국 지방 함대라는 것도 또 엄청난 수준입니다. 

러,일 전쟁 때 러시아 발틱함대가 극동으로 이동하며 가장 무서워 했던 적은 일본의 함대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지브롤터 주둔 함대와 같이 세계 각지에 있는 영국 지방 함대였죠 

 

이 당시 영국 해군은 가장 우수한 최신 전함들과 동시에 가장 우수한 해군 전력을 가졌습니다

이들과 만나면 러시아의 발틱함대 정도는 그냥 궤멸되는 수준의 격차였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국제적 전략과 힘의 우열 관계가 엄연한데 영국이 가장 빡이 치는 사실이 있었으니...

 

 

 

러시아는 그 유럽의 국가 중 유일하게 아시아와 육로로 이어 진 나라였단 것입니다. 

즉 영국의 간섭을 무시한 독자적인 식민지 확장이 가능한 국가입니다 

땅 덩이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아시아 전체에 걸쳐 이어져 있거든요 

 

앞서 언급한 크림 전쟁으로 해군이 사라진 러시아는 차선으로 육로를 택했고 그렇게 아시아 확장을 시작하면서 중앙아시아, 페르시아로 스멀 스멀~ 확장했죠 

 

영국은 곧 자국 이권과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받아들이게 됩니다. 

 

(페르시아 지역 러시아-영국 대결)

 

​이게 바로 더 그레이트 게임 (The Great Game) 이라 부르는 장장 50년에 걸친 영국의 러시아 견제 정책입니다 

​지역은 페르시아(이란), 아프가니스탄으로 중앙아시아의 영국과 러시아의 팽창 경쟁 투쟁을 말 합니다. 

 

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대영제국이 가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민지 인도에 러시아가 육지로 진출해 국경을 마주 한다는 것!!

이는 영국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위협이자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각종 외교 견제와 국지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당시 영국은 이런 러시아의 존재를 두고 국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악의적인 이미지와 선전을 진행합니다 

유럽 전체에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퍼지게 되는 기간도 바로 이 시절의 일입니다. ​

반면 러시아는 워낙 후진국인지라 그런 언론, 외교 선전을 할 수도 없고 먹히지도 않습니다. 

외형적으로 형식상으로 러시아-영국의 식민지 경쟁이지만 실제는 일방적인 영국의 러시아 뚜까 패기입니다. 

 

이게 왜 사건이 중요한가 하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며 한번 들어 본 용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 입니다. 

 

영국이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고 당시 국제사회에 호소한 내용입니다. 

민간 기업, 민간 출판, 민간 언론을 통해 선전하며 영국이 주장한 내용이죠. 

 

그게 어느 정도의 성과였는가 하면 이 개념은 중국 청나라에 알려져 중국에서 크게 유행했고 이는 다시 청나라를 통해 조선 책략이란 서적으로 당시 한반도 조선까지 전해졌습니다 

 

주요 내용은 러시아는 국제 질서를 뒤 흔드는 깡패 ​침략 국가다!

러시아가 남하를 하는데 이를 막을 국가는 영국이 유일하다!

이런 무시무시한 러시아를 막기 위해 조선은 시급히 영국, 미국이랑 동맹 해야 한다! 라는 책략? 이죠 

 

19세기 중국, 한국, 일본 지식인들의 최신 교양 필독서였습니다. 

 

영국의 이러한 견제가 너무 거세자 러시아는 부담감을 못 이기기고 중앙아시아 정책을 폐기합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대신 또 다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극동의 중국 청나라였습니다.

 

이 시기 러시아의 정책의 변화를 "가죽푸대" 라고 비유 합니다. 

 

발틱 - 흑해 - 중앙아시아 - 중국 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정책의 변화의 이유는 주체적으로 결정한게 아닙니다 

가죽 푸대의 한쪽을 막아 누르면 다른 쪽이 볼록 해지듯 다른 쪽이 완전 막혀버려서 어쩔 수 없이 쏠리는 현상이란 뜻입니다. 

 

 

 

019세기 지구상의 모든 제 3세계는 유럽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860년 경에 이르면 이미 유일하게 식민지가 안된 미 개척 지역은 식민지 경계로 타협한 태국, 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지구상에 오직 "중국", "일본", "한국"만 남게 됩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식민지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아프리카 전체 보다 큰 자원 상품 시장이고 대영제국을 만들어 준 인도에 필적하는 규모 아니 그보다 크고 가능성 있는 거대 식민지입니다. 

 

이 거대한 중국 시장에 영국, 미국이 올인 하기 시작했고 프랑스, 독일도 콩고물을 얻어먹기 위해 달려들었죠 

 

중국의 가치에 비하면 일본은 워낙 듣보잡이라 중국으로 가는 교두보 정도 여기며 당시 열강들 조차 식민지 대상에서 제외할 정도였고 한반도는 아예 논외의 대상입니다. 

 

중국은 그 만큼 중요한 마지막 기회의 식민지였죠 

 

 

(중국의 열강 침탈, 지구상 마지막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쟁탈전)

 

19세기 말 러시아의 대외 정책도 전면 수정되며 중국 진출을 위한 극동 정책이 새로 입안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구한말 배우는 러시아의 존재가 이렇게 등장합니다.  

러시아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한반도 문제와도 연결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입니다. 

이 때는 조선과 러시아가 수교를 맺기 2년 전으로 영국이 사전에 러시아를 견제하며 발생한 사건이죠 

 

이후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사활을 걸은 일본과 엮이며 뜬금없이 러시아 VS 일본이 충돌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을미사변으로 한국 근대사에 배우는 아관 파천 사건이 터집니다. 

 

아관 파천은 말 그대로 한국의 군주와 정부가 러시아 공사관에 모두 피신을 해 온 사건입니다. 

 

러시아가 한반도를 완전 장악한 시기로 조선의 왕과 정부가 러시아 공사관에 의탁해 러시아에게 생명을 담보한 상황에서 원하는 뭐든지 할 수 있죠

 

근데 러시아가 한반도에 요구한 것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러시아 일본 전부 한반도에서 중립 지키자! 

한반도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공동 철수를 주장합니다 

 

이 것이 바로 니시-로젠 협정 체결입니다. 

 

이유는 러시아가 극동에 필요로 하였던 부동항은 이미 청나라 요동의 여순항을 조차 하여 달성했기에 한반도의 새로운 항구는 더이상 필요가 없었고 러시아의 주요 목표는 중국이었음으로 만주 지역의 합병과 중국 진출을 원하는 상황에서 배후 지역인 한반도의 영구적인 안정이 필요했죠

 

애초 해군력이 열세인 러시아는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를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일본과 마주하는 것 보다는 일본을 철수시켜 한반도를 안전 지대를 만드는게 더 이익입니다. 

 

이 협정의 어부지리는 당연히 한국이었습니다. 

 

한반도는 개항 이래 최초로 외세가 전부 사라진 정확히는 일본이 사라진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그때 진행 된 것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대한제국 선포와 광무개혁입니다. 

7년 동안 급속하게 근대화가 진행 된 시기입니다. 

 

이때 일본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반도를 먹을라면 러시아와 전쟁이 불가피 하다 결론을 내린 것이죠 

그리고 일본이 매우 영리하게 선택한 것이 영국과 미국입니다. 

그레이트 게임을 진행 중인 영국과 중국 시장에 이미 진출한 미국은 러시아의 만주 장악 조치에 크게 불만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일본은 영국과 1902년 "영일동맹"을 맺게 됩니다. 

 

이때의 동맹은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보면 극동 지역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스 2세는 영일동맹 소식을 듣고 사실상 일본과 개전 상태라고 기록합니다. 

이 충격으로 러시아의 극동 정책도 바뀌어 기존의 유화책을 모두 폐기하고 강경책으로 정책이 변경 됩니다. 

 

일본 역시 영국이 동맹이 되고 영국과 같은 이권을 가진 미국까지 일본을 지원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이상

 

이제 러시아를 먼저 공격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며 사실상 일본은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개전 직전까지 군비 확장과 군수 물자 확보에 총력을 다하게 되죠 

 

 

 

그리고 1904년 잰쟁 준비를 모두 마친 일본이 인천에서 러시아 해군에 기습 선제공격을 가했으니 

 

그게 러일전쟁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완공 되지 않았기에 육군을 극동으로 파견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고 해군 전력도 이미 장기간 전쟁 준비를 한 일본이 극동에서 더욱 우위에 있었던 상태입니다. 

거기에 기습 공격으로 승세까지 잡았죠 예상대로 일본이 여순항을 포위하며 러시아를 압박하자 러시아가 궤멸 위기의 극동 함대를 구원하고자 발틱함대를 파견하게 됩니다. 

 

발틱함대가 러시아에게는 최강의 함대라고 하는데 그건 러시아 자국을 기준으로 하는 소리고 실상은 영국의 함대를 만나면 바로 궤멸 되는 격차입니다 

 

러시아는 무서운 왕언니 영국을 피해서 아프리카 전체를 돌아 장장 2만 키로 이상을 항해해 어렵고 피곤하게 극동에 도착했습니다

 

 

 

궤멸 위기에 몰린 태평양 함대를 구원하고자 출발했지만 영국에게 공격 당할까 봐 수에즈 통과는 꿈도 못 꾸고 숨어 도망치며 지구 반바퀴를 신중하고 조심스레 돌았습니다.

이때 항해의 공포 기록이 발틱함대 사령관 일기로 전해지는 중입니다. 

 

아이러니는 사실 이때 영국은 쟤들 고생한다 ㅉㅉ 하며 공격할 생각이 아예 없었고 위치도 파악했지만 그냥 보내 줬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어렵게 도착하자 

미리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기 하고 있던 

일본 해군에게 공격을 당해 모두 궤멸 당하는 패전을 합니다.

 

 

(동해 해전에서 발틱함대 궤멸)

 

러시아는 자국의 모든 함대가 전쟁 과정에서 소멸해 버리는 막대한 피해를 못 견디고 결국 정전 협상에 응하였고

 

그렇게 러일전쟁이 끝납니다 

 

전체적으로 러시아의 패전이지만 러시아는 인정 안했습니다  

포츠머츠 회담에서 러시아는 일본에 배상금을 안 줬습니다. 

일본 역시 전투에서 승리를 했지만 파산 직전이라 종전이 급했죠 

 

당시 러시아가 넘겨 준 것은 딱 하나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인정입니다. 

 

일본의 고무라 회상이 자국의 사활이 걸렸다며 회담에서 매우 강력하게 어필한 댓가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러시아와 영국과의 오랜 경쟁 더그레이트 게임도 이 끝나게 됩니다. 

 

1907년 러-영 협상 입니다.

 

유럽의 신흥 강대국 독일이 등장 하며 유럽의 패권이 지형이 바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독일이 기존의 비스마르크 외교 정책을 폐기하며 적대적인 유럽 팽창 정책을 취하자

 

 

(독일의 외교정책인 비스마르크 체제가 끝장 나며 발칸 지역에 전쟁 기운이 일어납니다.)

 

식민지 보다 더 시급한 유럽 문제에 양국이 집중하게 됩니다.

장장 50년을 경쟁하던 영국과 러시아가 화해를 하고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양국이 동맹을 맺게 된 것입니다. ​

이때부터 러시아는 독일이 확장하는 발칸 반도에 모든 국력을 집중하는 것으로 외교 정책이 전면 수정됩니다. 

결국 이 지역에서 나중에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 당하며 세계 1차 대전으로 비화 되죠

 

1907년 영국 - 러시아가 체결한 러-영 협정은 오랜 '그레이트 게임'을 종식한 평화 협상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반도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때의 협상으로 러시아는 더 이상의 아시아 진출의 필요성을 다신 못 느끼고 아시아 정책을 완전히 폐기한 것이죠 즉 일본의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간섭할 우려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일본의 친러파이자 온건파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내각 회의에서 한반도 병탄을 주장하며 구체적인 일본의 한반도 병탄 계획을입안 확정한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1907년 한반도는 물론 만주 지역의 영향력을 러시아가 일본에 양보하는 협상이 중국 하얼빈에서 진행됩니다.  

 

그때 러시아와 회담을 하기 위해 온 일본의 대표가 바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바로 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협상 과정 중 한국사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납니다 

러시아는 이미 극동 정책을 폐기했지만 그 마무리인 최종 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진행하기를 원했습니다.

 

일본을 압박하여 설령 러시아가 극동에서 철수해도 북 만주 지역에 러시아의 이권이 지속되길 원했죠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일본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한반도 문제를 이용하게 됩니다. 

 

대한제국은 이미 을사늑약으로 망국이 된 상황입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몰린 고종은 선택할 것이 없죠

러시아가 저리 우호적으로 나오며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마지막 최후의 희망을 가집니다

 

러시아가 알려 준 대로 고종은 밀사를 유럽에 파견해서 유럽 열강들에게 독립을 보장 받고자 시도하죠 

그런 러시아의 계획에 일본은 놀라서 급하게 협상을 진행하고 러시아가 원하는 그대로 양보를 했습니다 

그렇게 러,일 협상은 예상과 다르게 일본의 신속한 양보로 무난하게 타결되죠 

 

그리고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존재와 쓸모가 이제 사라지자 헤이그에서 대한제국의 대표를 버렸습니다. 

 

(헤이그 밀사 3인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

 

러시아의 지원을 철석같이 믿고 그게 마지막 희망이라 여겼던 한국입니다. 

제발 한국을 살려 달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 하고자 이억만리 헤이그까지 온 대한제국 대표들이죠 

 

근데 막상 회의장에 도착 했을 때러시아의 결정적 배신으로 회의장에 들어 가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억울하고 울분에 찬 대한제국 대표들이 장외에서 호소하고 이준 열사가 현지에서 순국 하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바로 헤이그 밀사 사건입니다. 

 

이때 사건으로 고종은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 당하였습니다

사실상 러시아의 허락도 받은 상황에서 일본은 더이상의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졌고 

1907년 대한제국군의 강제해산에 이어 1910년 강제 한일병탄을 진행합니다. 

 

그렇게 한반도가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니며 교과서에서 배운 이른바 "러시아의 남하정책"이란 용어의 세계사적 내막이 이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