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군함을 앞세워 동경만에서 압박하자
일본은 곧바로 항복하고 개항을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조선을 개항 시키기 위해
미국은 미 해병대와 해군 군함을 조선에 파견합니다.
그렇게 한양으로 미 군함이 진격하였고
중요 길목인 강화도 수로에 미군이 진입합니다.
이때 강화도를 수비 하는 조선 군은
적함을 발견하자 곧장 포격을 하였고
미국 해군과 조선 수병들 간의 포격전이 시작되었죠
당시 포격을 맞은 미군 함정 한 사람이
이때의 경험을 짧게 술회합니다.
"남북전쟁 때에도 이렇게 맹렬한 포화를 받은 적이 없다"
미 해군과 강화도 포대의 치열한 포격이 있었고
무려 400문에 달하는 화포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근데 그 피해는 고작 미군 부상 1명 조선군 1명 전사
그 이유는...


당시 조선군은 이딴 걸 화포라고 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미군은 무기의 차원이 달랐습니다.
군함은 더욱 발전한 모두 증기선 함대였고
병사와 무기는 남북전쟁의 경험을 가진
정규군과 신형 대포로 무장한 상태입니다.
이 교전 이후 미 해병대 대위는 편지에서
당시의 포격 전과 조선 군의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포는 매우 조잡하오.
통나무로 된 포가 얹혀 밧줄로 묶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미리 정해진 지점 외로는 사격을 할 수 없다고 하오.
그래서 우리 배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에야 포격을 했소. 커다란 포환이 날아왔는데 배에는 전혀 맞지도 않았소.
단지 총통이라고 불리우는 소형 화기에서 발사된 조잡한 탄환 두어 개가 적중했다고 하오.
그 총통이라는 것은 두 명이 어깨에 걸쳐 메고 화승으로 발사하는 것이라고 하오.
단지 우리 승조원들 3명이 맞았는데 가벼운 부상이라고 하오.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우리들에게 그들이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 수 있을 것이요."
이후 조선 조정과의 미군 함대 사이의
일련의 교섭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조선 군의 수준을 파악한 미국은 강제 개항을 결심합니다.
미군은 힘을 보이고자 지상 군을 상륙하여
강화도 직접 점령하기로 시도 하게 되죠

그게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입니다.
양측은 대포의 수준에서도 이미 차이가 났지만
개인 화기는 더 심해 사실상 넘사벽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군의 개인화기는 낙후되어서
임진왜란 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불 지펴서 간신히 사격 하는 구식 화승총을
조선 군은 여전히 주력 무기로 쓰면서
조준도 없이 엉성하게 사격을 할 뿐이었죠
그에 비해 미군은...



이미 남북전쟁의 경험 가진 정예 병력이면서
최신형 후장식 소총을 사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 군이 화승총에 한발 한발 앞에 총알 넣고
불을 지피며 기다린 다음 사격을 할 때
미군은 후장식 소총으로 탄환을 빠르게 장전하며
안정적인 조준 사격이 가능했습니다.
화포 또한 조선군은 총통 수준의 화포들과
구식 홍이포를 나무에 고정하여 쏘는
명중률이 형편없는 화포 사격을 할 때
미군은 남북전쟁 당시 뛰어난 명중률을 입증한
강선포 끌고 와 조준하여 포격 하였습니다.
대포의 파괴력과 정확도 역시 넘사벽이였죠
미국의 침입 이전에 발생한 프랑스의 병인양요 때
그나마 당시 프랑스군은 전장식 소총을 사용하였습니다
개인화기가 성능에서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는 하나
조선 군의 화승총으로도 어느 정도 교전이 가능했죠
실제 조선군 은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며
나름 상당한 전투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직전까지 이뤄진 남북전쟁 경험으로
이미 무기 기술을 더욱 발전 시킨 군대였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고작 몇 년 격차이지만
군대와 무기가 전혀 수준이 전혀 다르듯
보통 큰 전쟁 이후 무기 수준은 급격히 달라집니다.
이 당시 미군은 사실상 무기의 수준과 질이
근대 육군으로 발전해 전환 되던 중이었습니다
미군은 이미 조선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군대가 남북전쟁 이후 군대를
감히 상대 할 수 없죠
그나마 다행? 인건 조선 군은 화력은 심각하게 밀렸으나
신무기?인 방탄복을 나름 개발해 입고 있었습니다.


천을 여러 겹으로 중층으로 쌓아 만든 옷으로
총알을 막아 내는 방식의 구식 방탄복입니다.
하지만 비극은 이런 열세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떠나서
사실상 전력 자체가 게임이 안되는 전투였다는 거죠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에 참가 한
미군과 조선 군 전력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군 전력 (해군 군함 포함)
- USS Colorado(1856년 건조/3425톤/10인치 포 2문, 9인치 포 28문, 8인치포 14문)
- USS Alaska(1868년 건조/2394톤/11인치 활강포 1문, 60파운드 포 1문, 20파운드 포 2문)
- USS Palos(1865년 건조/420톤/포 2문)
- USS Monocacy(1864년 건조/1370톤/13인치 구포 1문, 32파운드 포 2문)
- USS Benicia(1868년 건조/2400톤/11인치 활강포 1문, 9인치 활강포 10문, 60파운드 강선포 1문, 20파운드 후장식 강선포 1문)
지상군 병력
- 해군 및 해병대 1,230명, 12파운드 곡사포 85문
VS
조선군 전력
광성보 고정 포대 16좌
(불랑기포와 목모포를 사용했을 거라 추정)
지상병력
- 화승총병 500 여명.
....
이미 무기의 질과 수준도 넘사벽 차이인데
병력 규모와 숫자에서도 2배 이상의 격차가 났습니다.
그 결과 양측 피해
미군: 전사 3명, 부상 10명
조선 군: 전사 243명, 익사 100여명, 포로 20명



미군 3명 전사 VS 조선군 400명 전사...
그야말로 조선군의 참패였습니다
일방적인 학살의 전투가 벌어졌죠
미군 지휘관 사망자인 휴 맥키 대위의 경우도
조선 군이 죽어가는 와중에 반격해서
기습적으로 창으로 찔러 사망한 사례입니다.
사실상 전투라고 보기 힘든 전투가 진행되었습니다


조선군 500명이란 숫자도 미군의 상륙 3일전에
미군 군함이 등장했단 소식에 급히 파견된 부대로
지휘관인 어재현을 빼고는 강화도에
단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유리한 방어 위치를 파악도 못 한 상태에서
바로 전투에 임하게 된 것이죠
반면 미군은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왔지만
1200명의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었습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무기도 볼품없는 수준이라
미군이 상륙할 때 200명이 집중 사격을 했음에도
미군 병력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못 줬습니다
교전 중 미군 사망자가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총으로 아예 맞추지도 못 했다는 뜻입니다.
화기의 명중률도 형편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근접 병기 조차도 양측의 질이 달랐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동양과 서양의 야금술도
크게 격차가 벌어지면서 철의 강도가 달랐습니다
미군의 군도와 조선 군의 칼이 부딪치면
조선 군의 창 칼은 모두 부러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이런 압도적 차이의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이때 보여준 조선 군의 놀라운 전투 의지입니다.
진작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진행 되었음에도
조선군에서는 탈영자가 1명도 없었습니다.
광성보의 절망적인 전투의 과정에서
조선군은 그야말로 처절한 육탄방어를 했습니다.


화승총 무기가 소용없게 되자
조선군은 돌을 던지고 흙을 뿌려가며
그야 말로 몸을 던져 싸웠다고 전해집니다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조차
미군이 조선군 부상병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곧장 정신을 차려 싸우려고 달려드니
전투의 형세가 기울어져
사실상 학살에 가깝게 되었음에도
전투가 이상하게 안 끝나죠
미군이 전투가 드디어 끝났다 여기면
누군가 지휘관의 수(帥)자 기를 세워
다시 조선 군이 죽기 살기로 돌격하길 반복합니다
미군에게 기괴한 육탄전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때 본 인상적인 조선 군 지휘관 깃발을
전투 후 미군이 전리품으로 챙기게 되었고
그 병사는 메달오브 아너를 받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전사자 비율이 나온다는 건
전쟁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압도적 전력 차이가 나오고 패전이 명백한 상황에서는
보통 후퇴하거나 항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광성보 전투의 엄청난 사상자가 나온 이유는
스스로 전멸을 선택한 케이스였기 때문입니다.
조선군 피해 내역 중에서
전투 중에 전사한 240명을 빼고
익사 100명 이라는게 자살자입니다.
광성보 전투의 패전이 확실시 되고
방어 진지가 결국 미군에 함락되는 순간
남은 조선 군들은 강화도 앞 바다로
모두 뛰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결한 숫자가 100명이란 것입니다.
이건 당시 미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막연하게 동양의 유색 인종 오합지졸이라 여기며
일본처럼 단 기간에 개항한다 여기며 온 조선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면 강화도 앞 바다에
미군 군함이 등장했을 때 조선은 항복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조선과 협상 과정에서
군사력을 보여줬을 때 조선은 항복했어야 합니다
모든 협상이 결렬 되어 전투했다 해도
화력의 압도적 차이를 보였을 때는 당연 항복해야죠
근데 신미양요 첫 지상 전투의 광경은
당시 미군에게 충공갱 수준입니다.

광성보에 전투를 개시 하기
전 지휘관 어재현과 조선군 500명이 죽기를 맹세하고
군가를 불렀고 미군이 그 광경을 기록했습니다
그에 대해 묘사하기를
"무서울 정도로 구슬프고 장엄하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로 끝났으며
미군은 분명히 전투에 승리하긴 했지만
"대체 이 시퀴들은 뭐 하는 녀석들이지?" 라는
큰 충격을 안겨 준 전투죠
이 전투 이후 새벽에 초지진에서 있던
지휘관 이렴 등이 광성보로 야간 기습을 해왔고
미군 전투함 1정을 퇴각 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미군은 광성보 전투로 이미 탄약과 군수 물자를
상당량 소비한 상태에서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조선의 개항 계획이 당초 목표와 다르게
이상한 장기전으로 비화 될 것을 우려하죠
미군은 고심 끝에 결국 개항을 포기하고 철수하며
그렇게 신미양요가 끝나게 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당초 조선의 개항은 일본과 동일하게
단 기간에 쉽게 진행 될 것이라 판단하에
한반도에 진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완강하게 개항을 거부하였고
첫 전투에서 경험으로 미루어 봐 엄청난 저항이
향후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됩니다
미국의 선택은
1.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침략한다.
2. 출혈을 피하기 위해 조선 따위는 그냥 버린다
2가지 선택지가 남았고
실제 원래 목표이자 중요 국가인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그냥 깔끔하게 조선 개항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애초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식민 정책에서
식민화 목표는 오직 중국 뿐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모든 열강이 그러했죠
미국의 일본 개항조차도 중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교두보 역할이었을 뿐이고
애초 식민화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조선 역시 중국으로 가는 과정의 교두보일 뿐인데
미군이 인명 희생을 할 이유가 전혀 없죠.
이미 전투는 대승 했고 작전은 성공입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전투에서 크게 패전 하긴 했지만
어찌하였던 미국의 개항 요구를 좌절 시키는데
우린 성공했다? 입니다.
조선은 승리한 전쟁이라 선언하며
정신 승리 기념물인 척화비를 전국에 세우고
대원군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 시켜주게 됩니다
이때의 기세로 대원군은 숙원사업인
서원 철폐도 결국 성공 시키죠
문제는 조선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군대가 전멸한 전투를 승리라 주장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통 할리라 만무합니다
이후 청나라가 무참히 박살 난 모습이 알려지며
모두 사태 파악을 하게 되죠
조선 또한 개항이 절대적인 대세라는 진실입니다.
결국 기존 체제의 한계를 알게 되었기에
대원군은 실각하게 되고 개항을 준비하게 되죠.
그렇게 5년 뒤 엉뚱하게도 일본에 개항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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