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2 군사반란 성공 이후 하나회 멤버들 기념 사진)
하나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군내 불법 사조직
육군 사관학교 11기생을 중심으로 결성 되어
1970년대 이미 군부의 중요 요직을 장악하였고
급기야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및 내란폭동을 일으켜
1987년까지 내란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한 단체입니다
시작은 1951년 입소한 육군사관학교 11기생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은 정부 수립 이래 군 인력이 급했음으로
1949년 이전까지는 단기 교육만 간단히 이수 시키고 (1기~9기)
바로 장교와 장성으로 현역에 복무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장교 육성의 중요성을 느끼고
1949년 부터 2년 과정의 교육생을 처음 뽑기 시작했습니다 (10기)
이어 1950년 6월 1일 이를 다시 4년제로 전환하였으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육군사관학교가 폐교 되었죠
때문에 1949년 입학생과 1950년 입학생은
기초적인 소총 훈련만 이수한 상태에서
대한민국 존립의 위기를 맞이했고
바로 한국 전쟁 일선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다행히 국군의 노력으로 낙동강 방어에 성공하고
1951년 반격에 성공하자 미래를 염두하게 됩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비록 전쟁 중이라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장교단을 육성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1951년 4년제 육군사관학교의 다시 열고
본격적으로 신입생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들이 바로 훗날 하나회의 주축이 되는
육사 11기 생들입니다.
근데 이들 11기생들은 그 시작부터 어이없는데
스스로 선민사상에 찌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국가와 군의 미래를 위해서
11기 생 육사 생도들은 한국 전쟁 기간 중임에도
전쟁터에서 총알 한방 안 쏴보게 했습니다
오직 교육에만 매진하도록 배려해 주었죠
그러니까 선배들인 1~10기 들은
모두 국가가 전쟁 중인 와중에 전방에서 죽을 동안
이들 11기생은 안전하고 편안한 후방에서 지냈죠
휴전 이후 사건이 터집니다.
전쟁터에 끌려가 태반이 죽어나간 10기생을 비롯
전장에서 피 흘려 싸운 선배들 1~10기들에게
정식으로 개교한 육사 기수를 부여 하자
이들 11기생들이 반발을 하게 됩니다
????
11기생인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
우린 모두 4년제 정규 과정을 거쳤는데
그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애초에 그 뿌리부터 다르며 결사 반대하였죠
그 반대가 어느정도 였는가 하면
하나회 멤버(당시는 오성회)중 한 명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대놓고 항명 했을 정도
이 당시를 회고하는 노태X의 말이 참으로 가관인데
"4년간 배고품과 추위를 이겨내며 힘들게 졸업한 우리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사건이다"
이게 다른 군인들이 한국전쟁 기간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공산당과 싸우며 피흘리는 동안
후방에서 안락하게 쳐 지낸 놈들이 한 짓거리입니다.
이런 개차반 11기 생들 중에
당시 전두X 노태X를 비롯해 5명이 결성한 것이
하나회의 전신인 오성회라는 불법 사조직입니다.
본인들 말로는 육사 내부에서
생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하나
말이 안되는 헛 소리입니다.
그 구성원들의 상태가 참으로 가관이기 때문이죠
우선 리더인 전두X의 경우 공부를 못 했습니다.
육사 입학 자체를 재수하며 늦게 입학한 경우이며
사관학교 내에서도 성적이 꼴찌에 밑바닥 수준이었죠
때문에 전두X은 사관생도 시절 내내
단 한번도 소대장 생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낙제에 가까운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했을 뿐입니다
나머지 이른바 "오성회" 맴버들도
하나 같이 죄다 유급에 낙제생들이었고
그런 비슷한 낙제생 전두X을 따라 다니던
모임 자체가 학내 열등생들 집단이었을 뿐입니다.
그 하나회 인사 중에 가장 똑똑하다 하여
하나회의 브레인으로 알려졌던 인물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오른팔로 훗날 2인자가 되는 노태x죠
그가 브레인이 된 이유는 놀랍게도
육사 생도 200명 중에 67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회에서 그 총명함을 두고 두고 자랑했으니
어떤 수준의 모임이었는지 말 다했죠

(하나회 군사 반란 성공 이후 발행 된 조선일보의 용비어천가 )
이 시절을 두고 훗날 조선일보는
권력자가 된 전두X을 찬양하며
용비어천가를 기사로 발행을 했는데
상납 해 올린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운동이면 못하는 것이 없고 생도 시절엔 축구부 주장"
전두X과 하나회 맴버들의 육사시절을 요약하면
육군 사관학교에서 공부도 지지리 못하던 열등생 들이
정상적인 학업 성적이나 실력으론 가망이 없기에
끼리 끼리 모여 인맥 쌓기와 정치질을 대신 한 것이죠
요즘으로 치면 학내 폭력 일진과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패거리를 만들어 위협하고 다니고
자기들끼리 서로 비호하는 조직을 만들었으니
그게 하나회 입니다.
이런 패거리 집단의 첫 이름은 오성회였고
곧 2명을 더 모아서 칠성회가 되었습니다
이 칠성회가 빛을 보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5.16 군사반란 덕분입니다.
당시 박정희가 당시 5.16 군사 반란을 일으켰고
군부가 국가를 전복 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것이죠
문제는 처음 시도된 군사 반란에 군부도 불안했습니다
때문에 그나마 지지를 확보해 보고자
육군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군사 반란을 지지해 달라고
공식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육군 사관학교 총 동문회에 요구했는데
문제는 당시 육사 총동문회는 나름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동문회를 나름 성적이 우수한 생도들이 이끌던 상황이라
군은 정치에 관여 할 수 없다며 단번에 거절하고
육군 사관학교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죠
쿠데타 군부 입장에서는 육사 출신 엘리트들의
충성심이 의심이 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이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던 중
전두X을 주축으로 한 11기생 열등생 모임인
칠성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 같은 영남 출신의 장교들인 것을 착안
이들과 연결이 되게 됩니다.
생도 시절 부터 하란 공부는 안하고
파벌 싸움, 정치질만 줄창 하던 전두환 일파는
출세에 대한 동물적인 본능으로
군부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기로 결정하였고
앞장서서 육사의 지지 선언을 이끌겠다며
충성심의 증거로 적극적으로 생도를 설득했습니다
이후 전두환의 노력이 대성공 하여
실제 육사생도들의 5.16 군사 반란 지지와
무려 서울 시가 행진을 성공 시킵니다.

(5.16 군사 반란에 대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지지 선언 및 시가행진)
당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입장에서는
육사 총동 문회도 반대한 이 행진을
전두X과 칠성회가 성공시키자 놀랐고
실제 그 파장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처음 겪는 군부 쿠데타를 두고
당시 군부 내부에서도 큰 혼란이 있었는데
이 행진을 통해 지금 군사 반란 집단이
청년 장교들인 육군 사관학교 생도까지 장악했다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효과를 주었고
이는 일반 시민들도 인지하게 됩니다
사실상 군부를 완전 장악한 것을 기정사실화 하며
군사 반란을 성공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죠
육사 11기 생들 중에 찌질이 출신
교내 폭력 서클 집단에 불과하던
전두X과 칠성회는 그 정치질의 대성공으로
이후 박정희가 아끼는 군의 중요한 충성파가 됩니다
당연히 대통령 인맥으로 그 단체도
군부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죠
원래 5.16 군사 반란은 파벌이 복잡했습니다.
군사 반란 성공 이후에도 반란 가담 세력 중에
정일권과 같은 함경도 출신 일파
백선엽과 같은 평안도 출신 일파 등등
다양한 파벌이 군부 내 존재 하였는데
군부 내부에는 전두X을 비롯한 영남 출신
박정희 충성 군부 인맥이 새롭게 부상하면서
군부 영남 파벌이라는 강력한 군내 조직이
새로 형성되게 된 것입니다.
실제 쿠데타 이후
같이 가담한 평안도 출신의 장도영의 체포를 시작으로
함경도 출신의 김동하, 박창암도 체포하게 되면서
다른 파벌에 대한 숙청이 단행되었고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반대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같은 고향 영남 출신 파벌로 군부를 휘어 잡아
사실상 군사 반란의 최고 권력자이자 지존이 되어
이후 굳건하게 권력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때 새로 조직 된 군내 불법 사조직
전두x 일당의 이름이 "일심회" 입니다.
"태양을 위하고 조국을 위하는 하나 같은 마음" 이란
다소 중2병스런 이름과 뜻이 담겼죠
1.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매 기수별 정원제로 유지하여 가입 시키되
2, 그 숫자는 약 5% 수준인 10여명 내외로 하고
3.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시 신명을 다하는 충성을 맹세케 한다.
4. 가입에는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고
5. 운영비는 고위층으로 부터 활동비를 지급 받거나 재벌로 부터 자금을 뜯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 회원이 누릴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진급 및 보직상의 특혜다
군부의 중요 요직은 회원들로만 돌려 먹으며 차지 하도록 밀어 준다
이딴 걸 강령이라고 공유하는 정신 나간 집단이었습니다
이 일심회가 바로 곧 하나회입니다.
하나회는 이후 승승장구하여
정권의 비호 아레 군부내에서
중요 요직을 독점하며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총애가 얼마나 남 달랐는지
전두X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한 바 있으며
(당시 전두X은 그 대신 알짜인 군부 요직을 먹겠다고 거절했음
실제 그 결과로 보안사령관 직위를 얻었고 쿠데타에 성공했죠)
전두X이 준장에 진급 하자 따로 차를 선물로 주었으며
노태X의 진급 시에는 다른 하나회 맴버들과 함께
하나회의 전신인 일심회의 이름 "일심"이 새겨진
장성 지휘봉을 따로 하사했을 정도입니다.
사실상 다른 일반 장교들과는 차원이 다른
파격적인 특혜와 예우를 해준 것입니다.
문제는 군부 사조직이라는 성격이 그러하듯
언제나 뿌리부터 썩으며 병폐를 만들게 됩니다.
1960년대 말을 지나자 사실상 대한민국 군부는
하나회 회원이 아니면 출세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릅니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노골적인 인사 혜택과
조직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고
하나회 구성원들의 발령처는 압축되어
모두 군부 요직인 국방부, 육군본부, 특전사, 보안사의 직위를
서로 물려주고 대물림하고 옮겨 다니며 돌려먹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예 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한
1980년 부터는 수도 방위 30대대장 7명 중 5명이 하나회
군대의 인사를 책임지는 육본 인사참모부장의 경우
17명 중에 15명이 하나회 맴버였으며
하나회 구성원의 경우 꿀보직이자 핵심 요직인
육본. 국방부, 보안사에만 집중적 배속을 받았기에
최전 전방에는 부임 자체를 하지 않는 상황에 이릅니다.
말 그대로 하나회 출신 장교는
전방 또는 야전 경험이란게 전무한 장교단이 되죠
승진을 위해 경력상 야전경험이 필요하다 여겨지면
전방도 아닌 서울 근교 일산의 재 9보병 사단
또는 부천의 9 공수여단으로 부임 하는게 전부입니다
당연하게도 서울 근교의 9사단과 9공수여단은
하나회가 아니면 지휘관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회 구성원이 전방이나 야전 지휘의 경험이
아예 없다는 것은 이는 다른 의미로
사실상 군인으로 기본이 안되는 것을 떠나
군인 자체로 자격이 없고 무능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회 맴버로 낙점이 되면 필수 조건인
정해진 소대장 임기조차 안 채우고
초고속 진급이 되는 기괴 한 상황에서
사실상 군부 적폐와 다름없는 이들이
어쩌다 야전 지휘관으로 부임하게 되면
매번 사고가 터지는 것은 당연지사가 됩니다.
하나회 구성원들의 경우
이종구의 경우 대대장 부임 당시에는
소속 부대의 총기 사건으로 10여명이 죽는 참사
최준병 사단장의 경우 훈령병 6명이 훈련 중 사망
그리고 부대원 월북 사건이 터지고
김징영 사단장의 경우 멀쩡한 소속 장병들이
대규모 동상에 걸리는 참사 까지 벌어집니다.
보통의 장교라면 파면 징계의 대상임에도
전부 하나회에서 손을 써서 무마해주었고
거꾸로 진급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진짜 더 가관은 월남 전 참전이었습니다.
월남 전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 국책 사업으로
대한민국 주요 장교들은 한번씩 파병을 다녀와야 했죠
특히 파병을 다녀온 장교는 1계급 특진에
무공 훈장 수여가 관례적으로 주어졌으니
전두X도 역시 월남에 파병을 가게 됩니다
근데 문제는 전두x는 야전 지휘나 전방 부대를
나가 본 적이 없는 무능한 지휘관이란 것입니다.
전두x 은 언제나 후방의 안전한 지역에서
정치질만 하며 군생황을 했을 뿐
군대 지휘나 전술에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실제 전쟁터에서 오니
정상적인 지휘가 안 되는게 당연하게 됩니다
전두X의 일화
부대의 전투 중 식수가 당장 모자른데
그 심각성을 해결하기는 커녕 거꾸로
혼자 온수 샤워를 하며 테니스를 치는
어이 없는 생활을 전장에서 하게 됩니다.
지휘 방식도 개판이라 당장 일선에서 문제가 되어
전시에 목숨이 걸린 위태로운 상황인지라
장교들의 항의가 지휘부로 쏟아졌고
전쟁터 부대원의 전체적인 사기의 저하로 이어져
결국 얼마 못 가 귀국 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당연히 전두X가 귀국하였을 때
당장 징계해야 한다는 성토가 빗발쳤죠
문제는 그가 총애 받는 하나회 수장이기에
징계를 할 수 없었습니다.
훈장 수여가 취소되고 진급이 유보 되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됩니다
전두X이 이 지경인데
다른 하나회 멤버도 정상 일리가 없죠
하나회 12기 13기들이 파병 갔던 사례에서는
야전 지휘의 기초인 경계 근무조차 태만히 하여
베트콩의 기습을 받아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그로 인해 문책의 위기에 몰리자
이를 만회한다고 베트남 야시장에서
베트콩 소총을 구입해서 가짜로 교전상황을 만들어 격퇴하는
가짜 전투와 전적 조작질 까지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
정치질에 올인 한 이들의 끝판이 뭔지 보여 준 상황이죠
이런 수 많은 개판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회 구성원들의 진급 속도는 가장 빨랐으며
그게 어느정도 였는가면 진급 속도는 너무 빨라서
과거 한국전쟁 전시 상황의 전공을 통한 진급 속도보다
하나회 회원이란 이유의 진급 속도가 더 빨랐을 정도입니다
전시도 아닌 평화 시에 이런 진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군부가 사실상 비정상으로 흐르고 있단 증거죠

(대한민국 국군을 말아 먹는데 일조한 하나회 멤버들 명단)
군부 내부에서 대놓고 정치질과 인맥과 지연을 동원해
지들끼리 중요 요직을 돌려 먹다 보니
국군에서 진짜 유능하고 총명한 엘리트들과 인재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공을 세워도 진급이 안됩니다.
최전방 야전 부대나 먼 시골 오지 부대만 뺑뺑이 돌다
진급도 못하고 전역 하는게 부지 기수가 됩니다.
인사 평가를 하면 하나회 출신들이
죄다 최우수 점수와 훈장을 쓸어가 버리니
정직한 군 복무로는 정상적인 진급을 할 수 없으며
아무리 신념 있고 능력 있어도 정치질이 아니면
군대에서 얼마 못 가 전역해야 하니
어디 하소연도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어차피 하나회 영남 출신 장교 아니면
군부에서 진급은 커녕 요직에도 못 가니
대한민국 장교 중에 유능하고 열정이 있는 진짜 군인들은
진급을 포기를 하고 전역 하거나
이민을 가는 사례가 수 없이 벌어집니다.
가장 심각 한 것은 당연히 군의 전력 저하 문제입니다.
야전이나 최전방에서 지휘를 해본 적도 없는 작자들이
군부 요직을 점유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군대의 군 장병들의 인권 개선이나
장병들의 처우 개선은 수십 년 간 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너무 흔한 비리인 병사들을 노예 처럼 사역 동원하는 것 부터
징병 된 젊은 군인을 개 차반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군대에서 당연하다는 듯 퍼지게 되고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사실상 정치 장교로 정치질만 몰입하고
전술이나 전략에 대한 개념이 없는 하나회 인사들로
대한민국의 군의 군사력 증강과 발전 자체를 가로 막게 됩니다
군 전술 체계에 컴퓨터를 도입하고
적전 성과 분석에 수학적 계산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군납 비리에 대상이 안된다고 무시되었고
군부의 신무기 체계의 도입이나 지휘 개선도
하나회 출신들의 정치적 개입으로 번번히 무산 됩니다.
거의 40년 간 한국군의 운용과 전략이 개선이 안되고
2차대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급기야 후진적인 정체 현상까지 가져오게 되죠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두고
국군 내부에서 당연히 지적이 나오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군 보안 사령관으로 부임한
강창성 장군이 그러합니다.
보안사에 부임하여 하나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합니다
근데 진짜 비극은 그 하나회를 키운게 대통령이란 것이죠
당시 하나회 출신 준장 1명이 전역하여 무마 되고
문제점을 지적한 강창성 장군은 거꾸로 보복을 당해
최전방 야전 부대로 좌천 인사 조치 됩니다.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12.12 군사 반란으로 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자
과거에 감히? 하나화를 건드렸단 괴씸죄로 찍혔고
강창성 장군에게 피의 보복이 단행되어
삼청 교육대에 무려 4번이나 끌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한국전쟁 참전 국가 유공자이자
대한민국 육군 장성으로 복무한 강창성 장군은
감히 하나회를 건드렸단 죄목으로
삼청교육대에 4번이나 끌려 다니며
주구장창 쳐 맞고 조리돌림 당했습니다.
이런 하나회가 성장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게
그 유명한 12.12 군사반란입니다.
과거 하나회의 존재는 단순히 군부 내부에서
군부의 꿀을 빨아 먹는 기생충 같은 정도였다면
이들이 신군부로 불리워지며 아예 권력을 잡아
대한민국이란 국가 전체를 장악한 5공화국 시기는
하나회의 찬란한 황금시대였습니다





하나회 맴버들은 이제 군부를 넘어 전역 후에
국회의원, 여당 대표, 공기업 사장, 장관, 차관, 외국 대사를 역임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젠 고작 군부 요직에만 머무는 단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권력의 중추로 자리 잡았고
보수 권력의 핵심 인사로 포진하게 됩니다.
사례로 들어 볼 수 있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 소개를 하면 이진X의 경우가 있습니다
군 복무 당시 이미 허세병에 걸린
무능한 지휘관으로 이미 악명이 높았으나
(정보 사령관 재임 시 정치깡패를 동원해 김영삼 총재 집과 문익환 목사집을 뒤지고
대낮에 국회의원 집단 폭행하는 등 한 말 그대로 깡패질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결국 그 딴거 다 필요 없는 하나회 출신 간판으로
무려 대장까지 역임하여 전역을 했습니다
이후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을 지내며
천안함 피격 당시 "왜 군번 줄을 착용 안했냐?" 라는 희대의 발언 부터
초대 받지도 않은 지역 행사에 뜬금 군용 헬기를 타고 나타나
행사를 망치며 지역민의 원성을 받는가 하면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유명한 발언
"방산 비리는 생계형 범죄다" 라는 주옥 같은 소리를
당시 국방 장관과 뱉어낸 그 장본인입니다.
과거 하나회가 군부 조직에서 조용히 악명을 떨쳤다면
이후에는 정치권의 실세로 세상에 드러낸 모습이죠
정치인들이 괜히 국민들에게 그토록 욕먹는 전두X을 두고
기여히 방문해 인사하고 절하고
신년, 명절 마다 꼬박 꼬박 방문해 드리는게 아닙니다
대한민국 여기 저기 하나회 출신이 여전히 포진했기 때문이죠
물론 전부가 정치권 재계로 나간게 아니며
그냥 군인으로 전역한 경우도 있습니다.
"성우회"라고 부르는 똥별 집단이 그 대표적인 집단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회를 끝낸 게 문민 정부의 김영삼입니다.
일단 본인 부터 하나회를 비롯한 신군부에게
지독하게 시달리며 괴롭힘을 당했던 인물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 이후 문민정부를 지향하였고
이미 대통령 당선 전 부터 군부 숙청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하나회를 제거하려다 시도하다 실패하였고
거꾸로 전두x에게 역습을 당해 12.12 군사반란까지 허용한
끔찍한 과거의 실패 전례를 알았기에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숙청을 계획을 짰습니다
이는 당시 청와대 비서 실장인 박관용이
하나회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비밀로 했을 정도입니다.
1993년 3월 8일 김영삼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불러 물었습니다
"군인들은 그만 둘 때 사표를 씁니까?"
이에 국방 장관이 답변 합니다
"군대엔 사표 내는 일 없이 인사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각오가 언제나 되어 있습니다 "
김영삼 대통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서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 사령관을 해임시킵니다
그리고 즉시 비하나회 멤버로 교체했죠 .
이어 아직 신임 육군 참모총장이 부임을 안 한 시점에서
육군참모총장을 불러 군부 내부 사조직의 제거를 공식 명령합니다
당시 육군 참모총장은 하나회 출신이었기에
본인이 하나회인데 하나회 숙청을 명령 했을리 없다 착각하고
아마도 ROTC 를 말 하는거 아닌가 오해했다 합니다.
이어 군 인사를 전격 단행하여
한 달 사이에 하나회 출신 장성 50명이 잘려 나가버립니다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숙청 작업이라
당시 하나회는 대응 자체를 못 했습니다 .
그리고 그렇게 끝나는가 했는데..
김영삼의 원래 목적은 대통령 권력에 위협과 방해가 되는
하나회 수뇌부의 교체였고 영관급이나 위관급은
적당히 무마해 건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하나회 장군 한 명이 숙청에 불만을 품고
술자리에서 병크를 터트리게 됩니다.
"군대를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 정부가 감히 군대를 함부로 대하니까!
외부에서 군부를 욕한다 정권을 가만둬선 안된다"
이어 고려 무신 정변이 왜 일어났는지 아냐 운운
선을 쎄게 넘는 위험한 발언이 이어졌고
이 언행은 곧 청와대에도 알려지게 됩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가 대놓고 조직적 저항했다고 판단
군부 내에서 하나회의 전면 숙청을 단행하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남아 있던 하나회 출신 영관급, 위관급 장교까지
모조리 색출되어 잘려 나가게 됩니다.
당시 참으로 김영삼스럽고 김영삼이기에 가능했던
신속한 군부 청산이라 평가를 받는 하나회 청산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특유의 과감함과 신속한 결단 때문 덕분이죠
이후 대한민국 군대 내부에선 사조직이
전면 불법화 되었고 금기 시 됩니다.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군대에 유독 방산 비리가 많았던 이유
이상하게도 군대 문화가 개판이며 병사들을 노예 취하는가?
이 모든 병폐의 원인은
대한민국 군대에 거대한 기생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나회의 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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