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글

역사상 유래가 없던 조선의 오랜 평화.

역이기 2024. 9. 3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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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이 상서 하기를

"사졸이 이미 훈련이 되었고 군량도 이제 갖추어졌으니 동명왕의 옛 강토를 회복 할만 하다" 

 

정도전이 외이가 중원의 주인이 된 일을 논하고 도참을 인용하였다. 이에 상감의 뜻이 결정되었다 

- 조선왕조 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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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도 나름 패기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건국 초기 명나라와 갈등을 겪었을 당시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자  

조선의 정도전은 곧장 요동 정벌을 준비하였습니다. 

과거 고구려를 논하며 옛 우리 강토라 주장 하고 

중원을 정복한 북방 민족을 인용하기도 했죠 

 

역사가 또 어찌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명나라와 전쟁과 화친 중 무얼 하는가 논쟁은 

결국 갈등의 주체인 주원장과 정도전이 사라지면서 

양국의 전쟁 위기는 유야무야 해결이 되었습니다 

 

사실 명나라는 조선과 전쟁을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명태조 주원장이 후대에 유훈으로 남긴 "황명조훈"에서  

절대 전쟁하지 말아야 할 국가 15개국을 언급했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조선입니다. 

 

이는 조선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새로 창업한 왕조의 국내 정세도 불안한데 

전란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해야 하는 

신생 국가의 입장에서 대규모 원정은 무리입니다 

 

결국 조선은 전쟁이 아닌

명나라의 패권을 인정하는 사대를 선택하였고

사대를 통한 평화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조공 책봉 관계를 맺은 것이죠 

 

 

 

동아시아는 유럽 대륙 또는 다른 문명과 다르게

국가들의 역량과 크기가 서로 동등하지 않습니다.

 

중원 대륙을 통일한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단순히 통일 왕조가 출현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아시아 전체의 인구 + 경제 생산 + 문화의 90%를  

단 1개의 국가가 독점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생산력과 인구의 90%를 독점한 국가는 

주변 국가들과 동등한 관계를 성립 할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 외교의 기본은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국가 간 비대칭 관계가 기본 값인 지역입니다  

압도적인 국력과 생산력을 가진 한 개의 국가와

그 주변의 국가들이 교류하는 관계입니다. 

 

주변부 국가들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90%의 물산을 빼앗을 것인가 

화친을 통해서 90%의 물산을 교역할 것인가 

 

만약 전쟁이 아닌 화친을 한다면 

중원 왕조의 힘과 우위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조공,책봉 관계를 맺습니다

 

 

 

조공, 책봉의 의미는 간단히 하면 

 

조공 = 경제적 교류와 무역을 허락한다 

책봉 = 평화를 보장하며 침략하지 않겠다. 

 

조공을 통해 국가를 정식 교류 상대로 허락하니 

주변국은 대륙의 물산과 문화를 수입 할 수 있고 

책봉을 통해 그 왕조의 존재를 공식 인정해 주니 

주변국은 대륙의 침략 위협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리고 통일한 국가는 이런 조공국을 거느린  

천명을 받은 유일한 황제로 정통성을 가집니다. 

 

이 관계를 "조공 책봉 질서"라고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장장 2천 년 간 이어 온 질서입니다. 

 

 

 

 

조선은 당시 명나라의 이런 우위를 인정했고 

나아가 적극적인 명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통해

명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조공국으로 올라가   

제 1번국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명나라는 조선의 왕을 황태자 다음으로 대우했죠 

 

그리고 나름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그것이 가져 온 결과가 보여줬습니다. 

 

정작 명나라는 이후 북원, 오이라트와도 싸우고

토목의 변으로 황제가 포로가 되는 치욕도 당하며 

지속적인 전쟁을 끊임 없이 계속 했으나

 

조선은 사실상 국가 단위 전쟁이나 침략이 없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절대적인 평화의 기간을

자그만치 200년이 넘게 누리게 됩니다. 

 

 

 

 

 

외부의 침략과 전쟁 위협이 사라진 시대. 

 

이때 조선에서는 한글도 창제되었고

장영실 등이 과학과 천문학도 발전 시켰으며

주리론 주기론의 성리학을 심화시키며

조선 최대 전성기와 번영을 이뤘습니다

 

이따금 북방의 여진족이 준동 하고 

왜구가 해안에서 소란을 일으키곤 했지만 

몽골의 침략 같은 국가적인 위기는 이제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굴욕적인 외교라고 평가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외교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죠 

명나라가 존재하는 한 평화와 안정이 보장됩니다 

 

그리고 그 평화 속에 안주하게 됩니다.  

 

 

 

조선도 건국 초기에 군사제도를 확립했고 

나름의 강력한 군대를 양성했던 적이 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중앙군을 제외한 

지방군 정규군만 그 수가 10만에 달했죠

정군 1인당 3명의 봉족이 할당 되었습니다. 

군역을 지는 정군 1인의 무장과 군수 물자를 

세금을 납부하는 봉족 3인이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초기 확립한 군사 제도나  

산성 중심의 수비 같은 각종 방어 전략들도 

그 시스템을 100년 정도 잘 유지하면 다행입니다.

전쟁 없는 평화가 200년 이상을 지나게 되면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 하는게 불가능합니다.

군대를 운영하고 대비하는 기본적인 행동조차도  

실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비효율이 됩니다 

 

 

 

예를 들어 

 

성을 보수하고 군량을 비축하는 기본적인 것도 

처음 100년도는 규정대로 잘 지킬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해 할 수 없는 행위가 됩니다

 

왜? 쌀을 산성 군량고에 힘들게 옮겨 보관을 하다 

다시 수년 후 썩은 쌀을 또 교체하기를 반복하며

소중한 물자를 낭비하고 사람들을 고생 시킬까요   

어떻게 보면 정신 나간 행위죠 

 

1인의 정군을 무장 시키고 훈련하기 위해

2~3인의 보인이 할당되어 내는 세금은

처음에는 합리적인 군비 확보 제도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유 없이 군포를 납부해야 하는 

비합리적인 가혹한 세금이 되어 버립니다 

 

 

어느 강직한 관리가 한 명 있어 

전쟁에 대비하고 규정을 지켜야 한다며 

백성들을 동원해 열심히 본분을 다해

군 장비를 확보하고 군사 훈련을 했다 치죠 

 

"지금 백성들에게 가혹하다 원망을 받겠지만 

전쟁이 터지면 이 선견지명을 고마워 할 것이다!"

 

근데 아들에 손자가 어른이 되어도  

세월이 지나 100년이란 시간이 더 가도 

우려했던 전쟁 따위는 없습니다 

 

이쯤이 되면 조선에서 군대 양성을 주장하고 

지방 관료들이 군사 규정을 잘 지키는 것 자체가 

정신 나간 짓 또는 폭정과 낭비가 됩니다. 

 

말이 숫자로 200년이지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쟁이란 개념은 

고조 할아버지 시절에나 있었다고 들은

오래 전에 있던 전설 같은 경험이고 

역사 책이나 소설 속 이야기에만 나오는 것이

전쟁이란 뜻이 됩니다. 

 

그렇게 조선의 군사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조금씩 와해 되었고 유명무실해 졌습니다 

 

그리고 1592년 

왜군 15만 8천명이 부산에 상륙했으니 

 

그게 임진왜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