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씨의 진(晉)나라를 끝장 내고 등장 한
남조 유송(劉宋)왕조 이야기입니다.
국호는 송(宋)나라인데 후대에 등장하는
고려시대 중국의 송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유송(劉宋)이라고도 구별해 부르죠
이 왕조의 역사는 좀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냥 역사 이야기를 할 뿐인데도
졸지에 고어, 호러, 엽기 시나리오가 되는 나라입니다.
유송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 하면 '막장' 입니다.
보통의 국가라면 폭군 황제가 한 두명 등장하는데
남조 유송의 경우 즉위 한 황제가 몽땅
그냥 죄다 폭군인 나라입니다.
등극한 황제 9명 중에 6명이 폭군인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괴랄한 국가죠
역덕후들 사이에 나름 유명한 네임드 국가입니다.
황제들이 주로 하는 일이
살인, 폭행, 강간, 윤간, 수간, 고문, 납치감금 입니다
유송 시절 이들 황제들의 행적을 축약하면
남자 친척은 고문, 난도질 해 죽이고
여자 친척은 납치해서 겁탈 한다

(머리에 비디오 테이프를 쓴 황제 유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처음부터 막장은 아닙니다
사마씨의 진(晉)나라를 끝장내고
남조 송나라를 개국한 초대 황제 유유는
전형적인 창업 군주 영웅이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자기 개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 해 성공한 사람입니다
마치 한 고조 유방과도 흡사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죠
심지어 삼국지 시절 제갈량이 꿈꾸었던
북벌을 실제 달성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과거 중원을 잃고 촉땅이나 강남으로 밀려난
피난 국가들의 목표는 중원회복이었습니다.
촉한에서는 그 유명한 제갈량이
동진에서는 환온과 같은 인물들이 도전했죠.
모두 장안과 낙양을 수복하여 중원을 되찾고자
일 평생을 쏟아 노력했지만 전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개국 황제 유유는
그 꿈을 실제 이루는 엄청난 업적을 세운 인물입니다.
동진(晉)의 장군으로 북벌에 나서서
장안성과 낙양성을 회복하고 그 일대를 평정해
진짜로 북벌을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합니다.

(남북조 시절 남조 최대 영토를 차지한 송나라)
다만 반전이 유유가 북벌을 한 목적은
중원을 수복해 나라를 부흥 시키자 따위가 아니라
그냥 전공을 세워 황제가 되는 거였단 거죠
유유는 딱 여기까지! 만 하고
군대를 회군 하여 동진의 사마씨를 협박해
선양을 받아 황제로 즉위하였으니
그가 세운 왕조가 사마씨의 뒤를 이어 개국한
남조의 송나라 유송(劉宋)입니다.
유유는 황제 즉위를 마친 후
황제 자리를 선양해 준 고마운 사마씨들을
모조리 도륙 하여 씨를 말려 버렸습니다.
과거에는 선양 받는 대신
전 왕조의 황족은 살려줘서 먹고 살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선양의 오랜 전통과 미풍양속은
유유가 처음으로 가차 없이 끝장 냈습니다
황제가 된 송 무제 유유에게
가장 큰 고민은 자식 농사였습니다
유유 자신이 젊어서 전쟁터를 도느라
너무 늦게 자식을 보았기에 가족에 항상 소홀했죠
일단 아들이 전부 어린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태자가 너무 멍청했다는 것입니다.
왕조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태자인데 하는 일은
우리처럼 그냥 죽어라 노는 거 말곤 없었습니다
유유 본인도 이걸 알아서 태자를 폐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을 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신하들이 잘 보좌해 줄 것이라 희망을 품었죠
결국 태자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 주게 되었으니
그가 2대 황제 유의부입니다
그리고 새 황제 유의부는
그런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며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쳐 놀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유유가 북벌을 하고 고생해서 정복한
중원의 낙양 등 광대한 영토는
아들 유의부의 손에서 전부 날아가 버립니다.
유의부는 취미는 채찍으로 사람을 패는 것이고
하는 일은 궁궐에 술집을 만들어
술 장사 놀이를 하는 거였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 것이죠
개국 황제 유유는 충직한 신하들이
황제를 잘 이끌고 보좌해 줄 것이라 믿었죠
기대에 부응하여 신하들은 모두 들고 일어나
유의부를 죽여 버리기로 합니다.
폐위하여 연금한 뒤 죽이러 사람을 보냈죠
또 눈치는 오지게 빨라서 그걸 알아채고
살려고 도망쳤지만 붙잡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나이가 고작 18살입니다.
이때 신하들의 추대로 제위에 오른게
남조 송나라에서 그나마 멀쩡한? 황제 유의륭입니다

3대 황제 문제 유의륭이죠
사실 이때부터 유씨 황족들의
괴상한 가족력이 조금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개국 황제 유유의 자식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하나 같이 정상적인 애가 없었습니다.
일단 태자인 유의부가 15세에 즉위 하여
포악하고 무능했던 것은 이미 위에 이야기 했죠
바로 밑에 동생인 유의진의 경우
12세에 북벌군 총사령관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일단 유유가 대체 뭔 생각으로
12살 애한테 이런 직책을 줬는지도 미스테리지만
놀라운건 12살 짜리 어린아이가 그 와중에 한 짓이
전쟁터에서 학살과 약탈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그 포악함을 걱정해
유의부를 죽일 때 세트로 같이 죽였습니다
형들이 이 지경인데 다른 동생은 그럼 멀쩡한가?
유의륭이 병이 들어 동생 유의강에게 정사를 부탁하니
이놈이 한다는 짓이 바로 역적 모의입니다
놀라서 바로 진압한 뒤 금쪽이를 붙잡고 타이릅니다
주변에서 옹립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관대하게 용서해 줬죠
동생이라고 그냥 살려주고 곱게 유배를 보냈습니다
근데 금쪽이가 또 역적 모의를 하다 걸립니다
또 관대하게 용서해 줬어요
근데 이런 걸 2연타로 겪고 나니
더이상 금쪽이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장차 북벌이라는 국가 중대사를 앞두고
뒷 통수가 너무 근질 근질 불편한 거죠
결국 오은영 박사님과 상담 끝에 죽여 버립니다.
유의륭의 형제들은 죄다 이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유의륭 본인은 내치를 잘했습니다
그의 집권 시기를 "원가의 치지"라 부릅니다.
나름 정치가 안정되고 태평했던 시절이죠
이후 벌어진 생지옥에 살아가던 백성들이
그래 그땐 참 좋은 시절이었다....
훗날 눈물로 회상하며 칭송한 황제입니다
다만 유의륭도 금쪽들의 형제였기에
그에게는 아주 작고 사소한 단점이 있었습니다...
유의륭은 황제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병법의 천재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는 천재적이고 신묘한 병법은
원가 북벌에서 유감 없이 보여줬습니다.
어느 정도 신묘한 병법을 구사했는가 하면
당시 유의륭은 낙양 원정군을 조직해 북벌을 보냈죠
근데 북벌군의 지휘를 전방의 장군이 아니라
수도에서 본인이 직접 했습니다. ???
뭔 말인가 하면 수도에서 무려 1,400km 떨어진
전장에서 싸우는 원정군 지휘를 직접 했단 말입니다.
일단 가장 빠른 역마로 서신을 전달해도
최소 5~6일 걸리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황명에 따라 전진과 후퇴를 결정해야 하니
유송의 북벌군은 제대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로 북벌군은 전멸했고
황하에서 장강 사이에 있는 약 500km 구간은
완전 초토화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유유가 자식농사를 망쳤듯
유의륭도 그놈의 빌어먹을 유씨 황족놈들을 낳았죠
일단 장남인 태자는 개망나니였습니다.
그 밑에 둘째 아들은 넷쩨 딸인 여동생이랑
근친상간을 했습니다
유의륭이 이를 알고 빡쳐서 이를 어쩌나 고민에 빠졌죠
근데 아들 두명은 반성을 하긴 커녕
이젠 옥으로 아버지 모습을 조각해 저주를 합니다
........???
아놔 이 자식들 결국 죽여야 하나
하지만 아버지로써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자 두 아들이
아버지 보고 그런 힘든 고민 하지 마시라고
아예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 들어 옵니다

그렇게 유의륭은 궁궐로 쳐 들어 온
아들의 칼날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들의 칼을 책으로 막다 손가락이 다 잘려나가고
난도질 당하여 처참하게 죽었죠
중국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태자가
황제인 친 아버지를 죽여 버린 패륜 살인입니다
패륜 태자 유소는 이후 얼마 안되어 쫒겨 났기에
비정통 취급을 받아 그냥 원흉 소라 부릅니다
그때 태자를 쫓아낸게 셋째 아들 유소입니다
셋째가 아버지가 죽었다 소식을 듣고 궁궐로 쳐들어와
태자 유소를 죽이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죠
4대 효무제 유준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들을 응징하고 황제가 되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유씨 황족의 혈통이 아니죠
곧 태자 유소의 아내 은씨를 비롯해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모두 붙잡아 끌고 왔습니다
둘째 동생 시흥왕의 아내를 비롯해 3명의 아들
이들의 일가 친척과 집안 식솔까지 죄다 잡았죠
그리고 모두 잔인하게 고문하며 채찍으로 때린 후
상처에 독주를 부어 죽였습니다 ??
참고로 태자 유소의 나이가 29살이었고
동생 시흥왕은 그보다 어렸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가족과 자식들이 고문 당해 죽임을 당할 때
모두 10세 이하 어린이와 유아였단 이야기입니다.
이때 형수인 은씨와의 대화가 전해집니다
은씨: "싸움은 니들끼리 했으면서 나는 왜 죽이냐?"
효무제 유준: "넌 아비(유의륭)를 죽인 역적놈(유소)의 계집이니까."
그래 여기까지는 아비를 죽인 역적을 처벌한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으니 이해가 된다 칩시다.
근데 이후 벌어지는 살육은 말 그대로 순수한 사냥입니다

효무제 유준의 경우
성욕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황제입니다.
사촌 동생들과 근친상간은 그냥 일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머니와 밤을 새는 일이 많았죠
때문에 당시 황궁에서 황제가 어머니와 간음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입니다.
패륜아 태자를 몰아내고 유준을 황제로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황족이 있습니다
(사실 이 집안에서는 대체 누가 패륜이 아닌지 구분이 안되지만...)
숙부인 유의선으로 전선인 형주로 나가서
제국의 변방을 10년 간 열심히 지키고 있었죠
근데 효무제 유준은 그 사이에 도성에 살고 있던
유의선 딸 즉 사촌 여동생을 납치해 버립니다.
그 후 붙잡아 궁궐에서 간음을 하였습니다
이름도 은씨, 사씨로 고쳐 부르며 위장하고
궁인들이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당연 죽였죠
근데 이게 숨겨질 일이 아니죠
결국 숙부인 유의선에게 이 사실이 발각됩니다.
이에 효무제 유준은 너무 죄송한 마음에
먼저 선수 쳐서 숙부의 집안을 멸족시켜 버렸습니다
큰 공을 세운 숙부도 이렇게 취급하는데
그의 나머지 동생들이 멀쩡할 리가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지 유의륭이 개망나니 자식 중에
그나마 멀쩡하다? 여긴 아들이 있었으니
유의륭의 여섯째 아들 유탄입니다.
생각하면 좀 빡치죠 같은 아들인데 왜 쟤는 멀쩡함?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쳐들어가 동생을 붙잡아 일족을 멸족 시켜 죽였습니다.
그와 그 가족들만이 아니라 가신을 비롯한 하인 1천명
그가 영지로 다스리는 광릉성의 백성들 까지 모두 학살했죠
단지 유탄이 사는 집에 함께 살았다는 이유
유탄이 사는 성에 살았단 이유가 죄였습니다.
나머지 10남 유무 14남 유휴무 등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일족이 모두 도륙 당했습니다.
2대 황제였던 유의륭의 자식은 무려 18명이 있었지만
이런 환경 속에 자식들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효무제는 유씨 황족 가문의
특별한 성품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일화를 남겼습니다
개국 황제인 유유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개고생을 하였고 남의 집에서 노비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유유는 국가를 창업하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 인지를
자신의 후손들에게 알리고 교훈으로 삼기를 바랬죠
때문에 개국 황제 유유는 궁궐 안에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남의 집 종 살이 할 때 쓴 새끼 줄이며 등롱 등을 전시했습니다
후손들이 이를 보고 깨달아 창업의 고단함을 알고
부디 성군으로 자라나기를 바랬던 맘입니다.
효무제 유준은 황제가 된 후 이것을 목격합니다.
창업 군주인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고
이에 크게 감동하여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저 노인네는 비천하고 더러운 농사꾼에 불과한데
감히 이런 황궁에 섞여 있다니 너무 과분한 짓 아닌가!"
(할아버지 유유의 초상화를 손가락질하며)
개국 황제의 소박한 소망은
이처럼 훌륭하고 모범적인 개망나니 막장 후손에 의해
싸그리 뭉개지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그의 시호가 무려 효무제입니다
효도 할 효(孝) 무제
그런 효!무제 유준이 술과 여색 그리고 살인을 즐기다
35세로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이 즉위 하니
5대 전 폐제 유자업입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저 그림 속 인물의 나이가 풋풋하고 순수한 16살 소년입니다!! )
황제 유자업은 효! 무제 시호를 받은
자신의 아비를 쏙 빼닮았습니다.
즉위 하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왕태후가
병으로 곧 죽을 지경이 되었죠
태후는 죽기 전 아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아들 유자업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16살의 효성스런 아들 유자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자가 있는 곳에는 (곧 뒤질거라) 귀신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귀신 있는 곳에 왜 가냐?"
아들의 진심 어린 패드립을 들은 왕태후는 충격 먹고
내가 어쩌다 저런 자식을 아들이라고 낳았느냐며
자신의 배를 가르겠다고 절규하다
그렇게 통한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자업은 어려서 총명하여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가 역사를 좋아했다는 의미가
무슨 선대의 미담과 교훈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었죠
조조가 전임 황제의 무덤을 도굴 하기 위해 만든 발구 중랑장
백성들의 무덤을 도굴 하기 위해 만든 모금교위 관직 등
옛날에 벌어진 패륜과 도굴 행위에 흥미를 느껴서
역사를 즐겨 읽었단 아주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즉위 후 바로 하려고 한 행동이
자기 아버지 유준의 무덤을 도굴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신하들이 기겁을 하며 말렸습니다.
유자업은 하고픈 것을 못해 분이 안 풀렸는지
도굴 대신 무덤에 똥을 뿌렸다고 합니다
대신 계모인 은귀비의 무덤을 파해쳐 도굴했습니다.
호기심은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유자업이 이처럼 그저 단순히 불효 막심한 놈이면
그나마 다행이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가 아비를 능가하는 진정 미 친놈이란 것이죠
우선 무덤을 도굴 한 은귀비의
10살 짜리 아들 유자란을 붙잡아 죽였습니다.
웃긴게 유자란은 이복동생인 동시에 육촌 동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귀비가 앞서 언급한
효무제 유준이 납치한 사촌 여동생입니다.
유준이 숙부인 유의선의 딸인데
납치 감금 후 은씨로 고쳐 위장한 것이죠
이 시기 유송 황실에서 근친상간이
너무 많이 벌어지다 보니 벌써 족보가 꼬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작 16살에 즉위 한 어린 소년 유자업은
집안에 있는 어르신들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유의공이란 작은 할아버지의 존재가 특히 좀 불편했죠

그래서 어느날 작은 할아버지집에 그냥 쳐들아가
그 일가족과 식솔을 모두 도륙해 버렸습니다
이때 유의공과 4명의 아들이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지가 잘려지고 내장이 파헤쳐 졌으며
눈알도 모두 뽑혀서 죽임을 당했죠
이때 유자업은 이들의 눈알을 뽑아서
꿀에 절여 담가 "귀신 눈깔 떡"이라 불렀습니다
이어 고모를 황궁으로 불러서 강간하고 감금하였으며
이런 부끄런 사실이 알려지면 안되니
당연히 고모부와 가족들은 모조리 도륙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순서로
아직 살아남아 있는 숙부들을 잡아와
모두 차근 차근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유욱, 유후인, 유후악 3명의 숙부가
당시에 살이 좀 쪘었다고 합니다.
조카인 유자업 황제는 이들 뚱뚱한 숙부들를 붙잡아
진짜 돼지처럼 돼지 우리에 넣어 사육을 시작했습니다
숙부들에게 각각 이름도 애칭으로 붙여 주었죠
"살인왕" "돼지왕" "도적왕"
하루는 유자업이 "돼지왕" 유욱을 죽이고자
정말 돼지를 잡듯 나무 봉에 묶어 들고 나가려 했습니다.
이때 갇혀 있는 다른 숙부인 유후인이 뛰어 나와
유욱을 살리고자 재빠르게 기지를 부렸습니다
"지금 돼지를 잡으면 안되고 황태자가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에 잡아 축하를 해야 합니다"
다급히 외쳤죠
그 말이 그럴싸하게 들려서 유자업은
"그래 아껴두었다 나중에 돼지를 잡아야지"~ 하며
숙부 유욱을 잡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유자업은 자신의 친 여동생인
산음 공주와 근친상간을 즐겼습니다.
또한 돼지 우리에 갇혀 있는 유후인의 어머니
양씨를 잡아 끌고 와 음란한 성추행을 강제로 하였죠
그리고는 신하들을 시켜 윤간 하도록 하였습니다
유자업 황제가 황족 일가 친척 신하들과 간음을 하는 건
이젠 따로 언급 안 해도 될 정도로 거의 일상이 됩니다.
또 다른 일도 있습니다.
역덕후인 유자업은 역사책을 보다가
특이한 구절에 갑자기 삘을 받았습니다.
역사를 보니 원소도 그러고 조조도 그러고
주로 셋째 아들이 총애를 받았네?
그리하여 유자업은 명령을 내려
황족 중에 셋째 아들을 모두
그냥 이유 없이 붙잡아 죽여 버립니다.
황족 중에 그나마 멀쩡한 황족 유창이
지방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
지극히 순진한 이유로 수도로 오게 됩니다.
"신임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려"고 말입니다.
이에 유자업은 저 놈을 죽이면 왠지 폼이 날거 같다는
지극히 유자업스런 이유로 죽이려 합니다.
수도로 오던 유창은 이 사실을 알고 놀라
가족을 모두 버리고 북위로 망명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다른 황족이 그러했듯
또 잔인하게 고문 당해 모두 도륙 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남조 유송의 유씨 황족은 훗날 죄다 멸종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때 북위로 도망쳐 목숨을 건진 유창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유씨가 되었고
그 혈통을 보존하게 됩니다.. ㅡㅡ;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유자업이 황제로 즉위 한 후 벌어진
위에 장황히 언급한 수 많은 엽기적인 미친 짓들이
모두 즉위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황제는 16살 소년입니다...
유자업이 궁중에서 살인을 너무 일 삼다 보니
이러다 우리도 다 죽겠다 여긴
궁중의 환관들이 몰래 유자업을 죽여버립니다
덕분에 그의 미친 폭정이 다행스럽게?...중단 되었습니다

(중국 드라마 봉수황에 나오는 전 폐제 유자업, 글로 써도 그냥 심의에 걸리는 인물인데 이게 드라마로 재현하는게 가능한가? 했더니 역시 중국 드라마 답게 판타지로 만들었습니다)
유자업이 그렇게 1년 만에 갑작스런? 죽임을 당하자
신하들이 모여서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였습니다.
그가 돼지 우리에 갇혀 지내다가
진짜 돼지처럼 도살 될 뻔했던 돼지왕 유욱입니다
6대 명황제 유욱입니다

(온순하고 복스러운(돼지왕) 인상의 6대 명제 유욱)
유욱이 황제로 옹립 된 이유는 오직 단 하나 입니다.
유씨 황족 중에 가장 온화하고 순하다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2대 황제 유의륭도 아들 중에 유욱만은
단아하고 온화하다 하여 총애 했을 정도죠
그런 온화하고 유순한 유욱을 황제에 옹립했으니
이제 숨 좀 쉴 수 있을까 싶었던 거죠
하지만 그럴리가요
무슨 가문에 숨겨진 살육의 본능에 눈을 뜨기라도 한 것인지
가장 온순하고 유순 하다는 유욱이 즉위 하자
이전에 없던 학살의 향연이 또 벌어졌습니다
일단 전전 황제인 유준의 아들 28명이 전부 끌려 나와
그의 가족과 식솔까지 포함하여 모두 도륙 당했습니다.
그리고 유욱은 이어서 다른 유씨성을 가진
형제 친인척들을 차례 차례 모두 도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과거 돼지 우리에 함께 갇혀
핍박을 받을 때 함께 고생한 동지도 있었죠
유욱이 끌려나갈 때 기지를 발휘해
유욱의 목숨을 구해 준 유후인과 그의 가족들도
모두 끌려가서 도살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씨 성을 가진 황족들은
가장 온화하고 순하며 착하다고 소문이 난
유욱의 손에 전부 씨가 말려졌습니다.
앞서 북위로 도망을 간 유창과
병약 하여 제외된 유후범을 제외하고는
유씨 황족은 전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사실상 유씨는 유욱 본인만 생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깜짝 반전 매력을 가진 온화한 황제 유욱은
돼지왕 별명 답게 폭식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상사도 아닌 복창증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즉 너무 많이 쳐 먹어서 죽은 거죠
그의 나이 32세의 일입니다

(7대 후 폐제 유욱)
6대 명제 유욱의 뒤를 이어 즉위한게
장남인 7대 후폐제 유욱(동명인데 한자가 다름)입니다
명제 유욱이 밥을 하두 쳐 먹다 복창증으로 일찍 죽는 바람에
장남인 후폐제 유욱은 고작 10살의 나이에 즉위를 하였습니다
보통의 왕조 국가에서는 어린 황제가 즉위를 하면
그것이 곧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막장 왕조 유송의 경우는
어린 황제의 즉위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즉위 한 황제가 너무 어려서
국가적 차원의 살육을 아주 잠시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도 결국 유씨인지라...
결국 15세가 되자 유감 없이
다시 일족의 모범적인 행동을 실천하게 됩니다
어느 날 수행원들을 무장을 시키고 궁궐 문을 나서더니
갑자기 수도 건강 도성 내에 계엄령을 선포하였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지금부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라!"
수도 한 복판에서요..네....그렇습니다
앞서 전폐제 유자업의 경우 패륜아, 근친상간,
일족을 죽이는 방법의 잔인함 등으로
악명을 떨친 지극히 평범한? 폭군 황제였다면
후폐제 유욱은 역대 폭군들과는 그 질과 차원이
역대 폭군들과는 전혀 다른 황제입니다.
말 그대로 살인귀 사이코패스 황제였던 것입니다.

일국의 수도이자 황제의 궁궐이 있는 수도 건강은
무슨 몽골족의 침략을 받은 게 아닌데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냥 황제의 즐거운 놀이로 도시는 순식간에
살육과 학살의 공간이 되어 초토화 된 것이죠
수도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이유 없이 살육 되어 죽어나갔고
공포에 질린 백성들은 집들 마다 문을 잠그고 숨었습니다
거리에는 인적이 끊어졌고 수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완전한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이때 황제의 나이가 고작 15살...입니다.
한창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소년 황제입니다.
유욱은 궁궐에서 각종 연장과 도구를
스스로 제작하는 걸 즐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든 자신의 장난감 연장으로
사람을 붙잡아 와서 썰고 뜯고 조각 내며 놀았습니다.
자신이 만든 연장들을 매우 아끼어
꼬챙이 송곳 망치 톱 등 살인 도구에
각각 이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니
그냥 사이코패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황제 유욱은
항상 쇠몽둥이를 옆에 끼고 살았다고 합니다.
매일 그 쇠 몽둥이로 사람을 패서 죽여야 그 후 밥을 먹었고
쇠 몽둥이로 사람을 패서 죽여야 그 후 잠에 들었습니다
대체 이게 역사인지 고어, 호러소설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정신나간 행동을 워낙 많이 했는데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하면 이런 일화들이 있습니다.
하루는 도성안에 심발이란 사람이
큰 부자란 소문을 듣고 집에 쳐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심발 앞에서 재미 삼아서
그의 가족들을 차례 차례 잔인하게 도륙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고
이미 반쯤 미쳐서 이성을 잃은 심발이 황제에게 외쳤죠
"너는 걸주와 같은 폭군이다 반드시 천벌을 받을거다!!"
그러자 감히 황제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로
몸을 조각 조각 잘라내어 천천히 죽였다고 합니다.
길을 가다 사람을 잡아 죽인 후 안고 있던 아기를
칼로 해체해서 젖갈로 담그는가 하면
승려를 붙잡아 몸을 해체한 후 죽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을 재며 관찰을 했다고 합니다.
기록의 내용이 맞다면
황제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거니와
보통의 평범한 사람으로도 보기 어렵죠
보통 상상조차 못하는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의
살인을 즐겼던 말 그대로 살인귀였습니다
황제라기 보다는 오직 살인에만 취미를 가진
개념 없는 사이코 초딩일 뿐입니다.
하루는 자신을 보호하는 근위대장이 잠에 들자
자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배가 나왔단 이유로
그 배를 과녁 삼아 활을 쏘며 놀았습니다.
다행히 화살촉이 없어 살아 남았죠
이후 근위대장은 잠에서 깨어나 공포에 치를 떨었고
조만간 죽을지 모른단 공포로 역모를 계획하게 됩니다
아니다 다를까 시중을 들던 양옥부에게
칠월 칠석날 밤에 뜬금 없는 명령을 내립니다.
"오늘 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는지 확인해서 내일 보고하라 안 그럼 죽는다"
황제가 이런 황당한 명령을 내렸고
이는 즉 넌 내일 걍 죽일 거다 라는 뜻입니다.
다음 날 죽는게 기정사실이 된 양옥부는
용기를 내어 그날 밤 후폐제 유욱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황제 유욱의 목을 잘라서
궁궐 근위대장에게 바치니

그가 남조 제나라를 건국 한 고황제 소도성입니다
후 폐제 유욱이 죽었을 때 남조 송나라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슬픈게 아니라 기쁜거죠
수도 건강의 주민들은 이제 살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무슨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황실의 후계자 문제였습니다.
송 명제 유욱이란 온화하고 순박한 황제가
유씨 성을 가진 황족들을 모조리 죽여서
이미 유씨 황족의 씨가 거의 말랐기 때문이죠
왕조 국가에서 황족이 없으니
송나라는 사실상 끝장이 난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씨 중에는 앞서 2명의 황족이 유일하게 남았죠
북위로 도망간 유찬과 함께 병약하여 목숨을 건 진
계양왕 유후범의 가족이 살아 있습니다
그의 어린 아들 유준을 황제로 옹립하였는데
그 11살 짜리 꼬마가
남조 송나라 마지막 황제 순황제 유준입니다
일설에는 이때 즉위 한 순황제 유준은
유씨 황족 중에 가장 개념 있는 황제였다라고 합니다.
근데 사실 이놈의 혈통은 믿을 수가 없죠
아직 안 커서 그렇지 그도 15살이 되면
대체 뭐로 변신할지는....그 누구도 모릅니다.
유준은 소도성이 선양을 받기 위해
임시로 옹립한 황제였을 뿐입니다.
이미 예정 된 선양 날짜가 되자
소도성은 유준에게 선양을 강요하였죠
근데 유준은 고작 어린 꼬마인데도
황제의 체통을 지킨다며 이를 거부하고 버텼었습니다
이제 그딴게 통할리가 없죠.
선양을 물리력으로 강제하게 되고
이에 순황제 유준이 궁궐 안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소도성은 폭력을 써서 끄집어 잡아오라 시킵니다
결국 숨어 있는 어린 황제를 후드려 패서 끌고왔고
잡혀 온 꼬마 황제는 울며 불며 다름과 같이 말했습니다
"결국 날 죽일 거지!!"
이에 소도성이 대답하길
"그냥 집만 다른 곳으로 조용히 옮긴다고 생각 하십쇼 과거 유씨들이 사마씨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황제 자리를 넘기는 선양 의식이 끝나고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서
과거 개국 황제 유유가 동진의 사마씨에게 그렇게 하였듯
꼬마 황제 유준을 포함 유씨성을 가진 마지막 혈족들은
모조리 색출 되어 도살 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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