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는 이전 고려 시대와 다르게
전국 각지에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기록의 나라 조선 답게 행정문서도 세밀했죠
행정 구역별로 작성된 거주하는 인구와 호적을
3년 마다 작성하였고 관청에서 보관했습니다

경상도 단성현의 호적대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단성현의 관내 호구에 대한 사항을 조사해 기록한 것으로
무려 선조 ~ 고종 연간에 이르기까지
장장 300년 간 작성된 호적 대장이 전해집니다.
호적 대장에는 호주의 이름과 나이 본관 직역
그리고 호주의 가족들에 대한 사항으로
아내, 아들, 딸 그리고 사돈, 사위까지
모두 자세하게 작성하여 기록되어집니다
때문에 해당 고을에서 어떤 가족이 300년 이상 거주하면
그 가문의 모든 가계도와 가족들 삶의 변화가 추적 가능합니다.

단성현에 살았던 수봉이라는 노비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수봉의 호적입니다.

아버지는 갓복이란 노비이고 어머니는 숙향이란 노비입니다
양친이 모두 노비인 진퉁 노비 혈통이죠
친할아버지는 누군지 모르며
외 할아버지는 역시 단문이라는 노비입니다.
아내인 자목의 가계도 나옵니다
부인 자목 역시 노비이며 장인 어른과 장모도
금금이, 애춘이란 이름의 모두 노비입니다
노비 가문 커플입니다
이들 노비 커플의 주인은 같은 고을인
단성현에 거주하는 심정량이라는 사람입니다
특이하게도 노비인데 본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은 없습니다.

그 후 39년이 지나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노비 수봉이 큰 돈을 벌었는지 면천을 한 것입니다.
조선 후기는 국가에 돈을 내면 신분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납속면천 : 일정량의 돈을 내고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
면역 : 일정량의 돈을 내고 국역에서 해방
수직 : 일정량의 돈을 내고 명예 관직을 받음
이렇게 3개의 정식 절차가 있었습니다.
위 호적에 따르면 수봉의 신분이 납속 통정대부라고 나옵니다
즉 노비였던 수봉이 큰 재산을 모아 납속하여 면천했고
심지어 돈을 더 내고 통정대부라는 관직까지 받았습니다
양인이었다면 돈을 내고 수직만 해서 관직을 받았겠지만
수봉은 노비였음으로 수직 이전에 납속까지 해야 했죠
수봉은 납속-면역-수직 3개를 한방에 해결 했습니다
아마도 큰 재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돈을 벌은 수봉이가
39년 만에 이뤄낸 성과입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는지 가족들 중에는
아들만 일단 면천 시켜서 양인의 신분입니다
아들이 어영청 보인이라는 것은 군역을 진다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양인들만 군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갓복=> 어련 으로 바뀌고
그동안 존재를 몰랐던 할아버지 이동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아들에게 성씨가 생겼습니다
김씨로 정했네요.

이후 3년 뒤 작성 된 호적입니다.
여전히 아내와 딸은 노비의 신분입니다.
수봉이 자신과 아들은 면천을 시켰고
이어 관직까지 얻었지만
아내와 딸 그리고 사위는 면천을 못 시켰죠
여전히 노비의 신분입니다.
아마도 돈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자 더 큰 변화가 생깁니다.
이름이 바뀐 아버지 어련의 신분이 정병이 됩니다
즉 군인이란 뜻으로 군역을 지는 양민이란 뜻입니다.
몰랐다가 새로 발견? 한 할아버지 역시 정병이 됩니다
이전에 돈이 없어서 면천 못 했던
아내와 딸의 신분도 바뀌었습니다.
딸의 이름이 조이(조선시대 평민 여성이름)
성씨가 생겨 김씨가 되었습니다
아내의 가족들 역시 평민이 되었습니다
장인 어른 금금의 신분도 정병 즉 평민이 되었고
성씨를 얻어 이씨가 되었네요
부인과 딸만 면천 시킨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딸의 남편 사위 가족들도 면천 시켰습니다
사위 박끝용의 신분도 노비에서 평민이 되었고
때문에 어영청보인으로 군역을 담당하게 됩니다.
사돈댁인 사위의 가족들 역시 모두 납속했다 나옵니다
사위의 성씨는 밀양 박씨로 정했네요.


다시 9년이 지나면 더 큰 변화가 생깁니다
아들 김흥발에 이어 손자 김소명 대에 이르면
수봉의 가계는 전부 양반에 이르게 됩니다.
아들 김흥발도 더이상 군역을 지는 평민이 아닙니다
수직을 통해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직을 얻었죠
동지중추부사는 고위 관직으로 명예직이라도
이를 사려면 큰 돈이 필요로 합니다
할아버지 어련 역시 가선대부 직함을 받았습니다.
흥발의 장인 어른도 거창 변씨 가선대부인데
매제인 박끝용네 가족도 면천했기 때문에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그리고 수봉의 손자이자 흥발의 아들
김소명의 경우 신분이 업무입니다
업무란 무과를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 무과는 양반 중에 낮은 계급 양반들이
준비하던 과거 시험입니다.
정식 양반 신분의 입구 컷 같은 것이죠
진퉁 노비 가문이었던 수봉이 가문이
70년 만에 양반 가문으로 상승한 순간입니다.

가문을 일으킨 가문의 영웅 수봉이
이제 증손자 대에 이르면
수봉의 가문에서는 노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직계 가족, 처가, 사위댁, 사돈댁 모두 양반인
진퉁 양반 가문의 면모를 가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 이르면 이미 족보 정도는 구입해서
완벽하게 구비한 정식 양반 행세를 했으리라 봅니다
증손자 김O오의 경우 그 신분이 유학입니다
"유학" 이란 과거 시험을 공부하는 유생이란 뜻입니다
유학으로 호적에 등재가 되면 군역에서 면제됩니다
무과 응시를 넘어 정식 과거시험까지 준비하는
진퉁 양반 가문이 된 것이죠

하지만 양반이란 신분이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증손자의 아들 현손 김종옥에 이르게 되면
중인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유학이 아닌 한량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량은 과거에 응시도 안 하고
무직자로 노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한량" 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아마도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나 봅니다
돈 벌어서 신분 상승을 하긴 했지만
학벌을 만드는 것은 돈으로 안되거든요
공부 머리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김O오의 신분이 학생입니다
"학생" 이란 과거 시험을 공부하지만
합격해서 관직을 얻지 못 한 양반들에게 붙습니다
제사 지낼 때 위패에 보통 "학생부군신위" 라고 쓰죠
죽었을 때 관직이 있었다면 관직명을 쓰지만
그렇지 못 했다면 전부 "학생" 이라고 씁니다
과거 시험과 유학을 공부하는 것은
합격을 못 해도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고
대부분 양반들은 모두 학생입니다.
때문에 '유학' 이란 신분으로 과거를 준비했던
증손자 김O오가 "학생" 이란 것은
결국 합격 못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가 쉬운 게 아닙니다


조선 후기에는 이런 신분제의 변동이 일반화 되었고
그 절차도 무슨 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행하여 졌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조선 후기 양반 50% 신화가
사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죠
국가의 군역과 세금을 피하는 방법은
양반이 되거나 노비가 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조선 후기 양반이 되는 길이 열리자
너도 나도 양반으로 신분을 바꾸게 됩니다.
이미 조선 후기 정조 대왕 연간이 되면
조선의 노비 인구 비율은 5% 이하로 떨어지고
대신 양반 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너도 나도 모두가 탈세하는 세상이 되죠
이는 국가 재정에 큰 문제로 심각한 논란이 됩니다.
아무튼
가문을 일으킨 영웅 노비 수봉이의 가문은
장장 100년에 걸쳐 신분을 세탁한 결과
뼈대 있는 진퉁 양반 가문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못 한 것이 가문의 한이기는 하지만
양반은 양반인 것이죠
지금 우리 사회의 학벌 주의 입시 지옥은
생각해 보니 엄청난 한을 품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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