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글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병탄 찬성론자입니다.

역이기 2025. 8. 18. 14:27

 

 

 

1900년대 초반 무렵 

 

이토히로부미는 일본 정계에서 자칭 하기를

스스로 대러온건파라며 러시아와의 전쟁을 

겉으로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고 

스스로 한국에 대한 온건파라며 한반도 병합을 

겉으로 유보 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러일전쟁은 바로 벌어졌고 

한일병탄도 바로 이뤄졌죠 

 

당연하게도 이토 히로부미의 말은 진짜가 아니라 

그냥 당시 연기하던 정치적 수사일 뿐입니다. 

 

러일전쟁은 삼국협상 직후 부터 

일본이 수년 간 국가의 총력을 쏟아 준비한 전쟁으로 

군수 물자 확보 등 모든 전쟁 준비를 마치자 

개전 기회를 노려서 기습해서 터진 전쟁입니다. 

 

한반도 식민지화는 메이지 유신부터 

일본 근대화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여기며 

(일본 고무라 외상의 공식 발언)

장장 40년 국가 전체가 올인 해 준비 한 계획입니다

 

애초 이토 히로부미가 반대하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닙니다 

한반도 식민지화 정책은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 작품이죠 

 

이건 무슨 비밀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가 한반도 병탄에 적극 찬성하며 

사실상 그가 주도해서 기만하고 침략했다는 것은  

100년 전 당시에도 사람들이 알았던 내용입니다. 

 

 

(시일야방성대곡. 이토 히로부미가 평화를 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침략자였다 속았다는 내용이죠)

 

당시 이토 히로부미에게 속았다고 

통탄하며 쓴 글이시일야방성대곡입니다. 

모두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입니다. 

 

그럼 실제 역사는 어찌 진행되었을까요.

 

 

- 1909년 3월 일본 내각은 한국 병합에 대해 확정하고

진행 방안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세워서 입안 합니다. 

 

이때 병탄 방법을 두고 내각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여 

용어를 한일 합방으로 할지 한일 병합으로 할지 논의하고  

병합 이후에 구체적인 통치 계획까지 수립해 확정 됩니다 

 

- 1904년 4월 내각에서 결정된 보고서 내용을 가지고 

일본 총리 대신 가스라 외무대신 고무라 그리고 

한반도 식민정책 총책인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만나

3자가 한국 병합에 모두 찬성함을 확인 받습니다 

 

당시 외무성의 일본 관리가 이 과정을 기록하며 

이토 히로부미가 평소 병탄에 반대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그의 진심은 원래부터 찬성이었다 라고 

외무성 회고록 기록으로 아예 자료를 남겼죠 

 

- 1909년 6월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직에 사임합니다 

사실상 한반도 병탄이 결정 된 상황에서 

추후 진행 될 한일 병탄 조약과 식민지화에 있어 

이토 히로부미가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위함입니다 

  

- 1909년 7월 일왕 주재 하 어전 내각 회의가 열립니다 

이 어전 회의에서 조선병합에 관한 건이 올랐고

일왕과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원 찬성이 결정됩니다 

 

당연히 이토 히로부미도 한국병합에 찬성을 표했고 

그 어전 내각 회의 자료에서 찬성을 한 자료 역시 

일본 외무성 자료로 그대로 전해지는 중입니다. 

이때 공식적으로 한국 병합에 대한 방침이 확정 됩니다 

 

-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갑니다 

 

자칭 친러파이자 온건파라 알려진 이토를 보내서 

일본의 한반도 병탄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발을 막고 

한반도와 만주에서 협조와 양해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하얼빈에 러시아와 회담하기 위해 갔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토는 한반도 병탄의 마지막 걸림 돌인 

러시아의 협조를 받고자 하얼빈에 도착한 것이고 

 

1909년 10월 바로 그 자리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입니다. 

 

 

이게 역사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반도 식민지화의 가장 큰 원흉이었고

안중근 의사는 한일 병탄을 결정하는 장소에서 

매우 시의 적절하고 매우 합당하게 응징을 했습니다. . 

 

다시 정리해 봅니다 

 

1.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에 반대했나?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에 공식 찬성했고 

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한 적 자체가 없습니다. 

한반도 병합에 반대한다는 것은 

당시 정치적 목적으로 떠든 위장일 뿐이죠 

무려 100년 전에도 그 사실이 구라임을 알았고

당시 일본 정부의 외무성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병탄에 공식 찬성 한 후에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 당했습니다. 

 

 

2. 이토 히로부미는 온건파라는 주장은 뭔 소리냐?

 

한반도 병탄에 급진파 온건파라는 말 자체가 

일본 애들이 언제 한국을 병탄 하는가 

시기의 차이에 따른 의견 차였을 뿐이지 

 

일본의 한국 병탄은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한 

일본의 국가 대계 였기 때문에 

단 한반도 한반도 완전 식민지화 이외의 

다른 선택을 정치적으로 고려한 바가 없습니다 

 

일본의 한반도 병탄의 급진파 주장은

고종 황제를 폐위 시켜 죽여 버리고 

한반도 의병과 저항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한 후 

완전한 저항 의지를 말살 한 뒤 병합하자 이고 

 

일본의 한반도 병탄 온건파의 주장은 

고종 황제를 살려서 형식적인 조약을 체결하고 

5년~7년의 시간을 가지며 천천히 병합 한다 입니다. 

 

급진파는 고무라 외상 등과 군부이고 

온건파는 고토신페이와 이토 히로부미 등이죠 

 

여기에 이토가 온건파였다 알려졌으니  

또는 병합에 반대했다는 낭설이 만들어졌을 뿐이죠  

 

그리고 이 모든건 사실 전혀 쓸모 없고 관련 없습니다 

애초 급진파가 주장한 병합 시점조차 1911년입니다. 

근데 병합이 결정 된 것은 그냥 1909년입니다 

 

한국에서 의병 전쟁이 격화되었고 

고종 황제의 각종 밀사 사건과 내통을 보며 

시일을 끌다가 자칫 새로운 변수가 생길 것을 우려해  

일본은 즉시 병합하는 것으로 결정 했습니다 

 

애초 온건파니 급진파니 따위는 

사실 중요한게 아니었단 뜻입니다.  

 

일본이 즉시 병합을 결정함에 따라 

한국 병합 및 절차를 위한 문건이 작성 됩니다.  

"병합후 한국 시정방침에 관한 건" 입니다

 

1910년 2월에 작성되어서 실행되었고 

1910년 8월 한국은 병탄되었습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상한 주장을 자주 봅니다

 

이딴 주장 

 

이토 히로부미는 온건파로 한일병탄을 반대했는데 

안중근이 암살해서 한일 병탄이 앞 당겨 졌다

 

???????

 

당연히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과거 일본 넷우익들이 인터넷 상에 이런 날조를 

부끄럼도 없이 퍼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함입니다  

 

근데 이걸 대체 어디서 배워왔는지 

한국인들이 한국 인터넷에서 주장하는 걸 봅니다. 

 

역사를 피상적으로 아는 수준을 넘어 

일본 넷우익이 만든 날조 자료를 역사로 믿고 

심지어 그걸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참으로 기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역사관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각자 자신이 가진 이념과 신념에 따라 

다양한 평가와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실제 존재한 

역사적 사실과 팩트에 기반해야 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를 

감히 모욕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내용조차 날조에 기반하고 있다면 

 

그게 진짜 치욕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