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글

중국의 모든 보물이 모여 있는 대만 고궁박물원.

역이기 2025. 8. 13. 12:32



(대만 고궁 박물원 전경)

 

중국에서 진짜 중요하고 귀한  

역대 급 보물과 청나라 황실의 유물은

현재 중국에 본토에 없습니다. 

 

모두 대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사연이 다음과 같습니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 하고

마지막 황제 부의가 퇴위를 하자

 

당시 국민당 정부에서는

청나라 황실 재산을 처리하기 위해

'청실선후처리위원회'를 조직하여 

학계의 전문가를 초빙했습니다

 

그리고 황실문물조사규칙 18조를 제정하여

청나라 보물과 재산을 조사했죠

그 방식은 매우 정교했고 주도 면밀했습니다

 

전문가, 학자들은 모두 등기 되어 등록이 되었고

한명 한명 전부 고유 번호를 지정 받았으며

이들 각각에게는 책임자로 관리가 배정되었습니다 

감시자 2명이 상시 이들을 따라 다녔죠

조사 과정에서 흡연은 금지되었고

단독 행동도 금지되어 함께 들어가고 나왔으며 

소변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행여 보물이 빼돌려 질까 조치한 것이죠

 

이중 청나라 건륭제의 개인 보물 창고는

수 백년간 봉인되어 개방된 바가 없었는데

그것이 개봉되자 엄청난 보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를 지켜 본 마지막 황제 부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던 것인가?" 라며

황제 조차도 놀랐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학계의 전문가, 학자들이 모여 이런 면밀한 조사를

약 1년 여에 걸쳐 진행하였고

그 결과 청나라 보물에 대한 전수 조사를 마치고 

정리, 조사, 번호 부여, 등기, 등록 업무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1931년 만주 사변이 발발하여

일본 군이 중국의 만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였습니다.

이어 괴뢰국 만주국를 설립했고

공개적으로 중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냅니다.

 

다음 목표가 중국의 화북 지방이 될 것은 자명했고

만주와 인접한 청나라 수도 북경은

조만간 전쟁터가 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죠

 

당연히 북경에 보관 중이던

청나라 보물에 대한 안전이 우려되었습니다

 

당시 중화민국 정부는

북경 고궁 박물원(자금성)에 있는 보물을 

남쪽 상해 조계 지역으로 이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알려지자 북경이 난리가 났습니다.

 

북경의 보물을 남쪽으로 이전 한다는 것은 

정부가 북경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단 뜻이니까요

각지에서 민심이 들끓어 소요 사태가 발생했지만

전부 진압했고 1933년 보물 이전을 강행 했습니다  

 

상해 조계 지역에 상자로 포장되어 보관 중이던

박물관의 보물은 다시 1937년 남경으로 이전 되었고

같은 해 7월 7일 일본 군이 노구교 사건을 일으키며

중일전쟁을 개시 하였습니다

 

 

(일본군의 침략으로 함락 된 북경)

 

일본군이 매섭게 화북을 휩쓸자

중화민국 수도인 남경도 전쟁의 위협에 처하게 되었고

중화민국 정부는 남경에 보관 중인 보물을

다시 서남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합니다

 

유사시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보물만 추려서  

2개조로 나눠서 사천, 호남 등지로 이동했는데

1조가 1937년 8월에 장사의 호남대학교에 도착해

대학 도서관 건물에 임시 보관을 했습니다

 

근데 장사 시 상공으로 갑자기

일본 비행기가 날아와 정찰을 시작합니다

어라?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죠....

 

당시 책임자였던 박물관 연구관인 나지량은

직감적으로 호남 지역도 위험하다 판단,

보물들을 더욱 깊숙히 있는 사천성 지역으로

모두 이전할 것을 결정합니다.  

 

1937년 12월 배를 이용해 또 어렵게 이전에 성공했고   

무하시 사천 성의 산 속에 보물을 짱 박아 보관 합니다

 

그리고 딱 1달 뒤

 

 

일본군 폭격기가 장사 시와 호남 대학을 폭격해

직전 한 달 전까지 보물을 보관하고 있던 

대학이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나지량'은 이 소식을 듣고

우리가 기적과 같은 천운으로 보물을 구했다며

크게 안도했다 합니다.

 

1937년 12월 8일 수도 남경에 아직 남아 있던

나머지 마지막 보물 상자까지 모두

사천성의 중경시로 안전하게 이전이 완료 됩니다

 

그리고 

 

딱 5일 뒤 중화민국 수도 남경은 함락되었고 

그 남경에서 역사상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이 벌어지죠

 

전쟁 기간 임시 수도인 중경의 안전도

사실 완벽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보물은사천성 가장 서 남쪽과 

더 깊은 운남성 귀주로 나눠 이전 됩니다. 

 

그렇게 상자로 봉인된 상태 그대로 

후방 깊은 곳에 보관 되었다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남경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국 대륙에 국공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죠

이후 국민당이 중국에서 패전 하는게

사실상 확실하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장제스가 보물의 대만 이전을

다시 지시하게 됩니다.

 

북경 자금성에 보관 되어 있던

보물 중 가장 귀중한 29만여 점을

우선적으로 대만으로 피신 시켰으며

 

남경에 보관 중이던 보물 중에

가장 귀중하다 여긴 보물을 골라서

70만점을 대만으로 이동 시켰죠

 

얼마 뒤

 

중국 공산당이 남경을 함락하였고

남경에서 국민당이 남기고 간

나머지 보물 100만 점은 

중국 공산당이 확보하게 됩니다.

이들 남겨진 보물은 지금의  

북경 고궁 박물원으로 이전 되었습니다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대만으로 가져간 보물은

대만 정권이 수립 된 이래 잘 보관해 오다

 

고궁박물관을 만들며

해당 유물에 대한 전시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건물이 본문 처음 사진으로 보여준

대만의 고궁 박물원입니다. 

 

 

물론 지금 중국은 대만 측에서

중국의 보물을 훔쳐 간 것이라 주장하지만

 

훗날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대혁명과 그 만행을 생각하면

니들이 감히 할 소리가 아니죠 

천만다행인 경우입니다.

 

대만의 고궁 박물원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인지라

 

한번에 전시를 못하며

유명한 대표적 유물을 중심으로

다른 유물을 교체하며 조금씩 전시 중인데

 

3개월에 한번씩 유물을 교체하여 전시함에도

무려 60년 간 단 한번도 유물이 중복으로

전시된 바가 없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위의 기구한 사연을 간직한

고궁 박물원의 대표적 유물 

 

중국의 절세 보물

 

 

 

 

삼겹살

 

 

 

 

배추

 

 

 

올리브 씨앗

 

 

 

 

소꿉놀이 세트 1

 

 

 

 

​소꿉놀이 세트 2

 

 

 

 

 

공놀이 세트

 

 

 

그리고 전국 옥새! 

 

 

끝.